선고일자: 1993.12.24

민사판례

신용장 사기, 은행도 책임있다? - 선적서류 심사의무

신용장 거래는 국제무역에서 흔히 사용되는 결제 방식입니다. 수입자가 물건 대금을 바로 지급하는 대신, 은행이 수입자를 대신해 수출자에게 대금 지급을 보증하는 제도죠. 이때 은행은 정해진 서류만 확인하면 된다고 알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서류에 명백한 하자나 위조 정황이 있다면, 은행도 책임을 져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사례는 바로 이러한 은행의 책임을 다룬 판결입니다. 한 은행(원고)이 수입업체(피고)의 요청으로 신용장을 개설했습니다. 수출업체는 중국 업체였고, 북한산 시멘트를 수입하기로 했죠. 그런데 수출업체가 선적 서류를 위조해서 은행에 제출했고, 은행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대금을 지급했습니다. 나중에 위조 사실이 드러나자 은행은 수입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은행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신용장통일규칙(UCP)에 따라 은행은 선적서류가 표면적으로 신용장 조건과 일치하는지만 확인하면 된다고 판시했습니다. (UCP 제17조) 그러나 동시에 서류에 명백한 하자가 있거나 위조된 것임을 알았거나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대금을 지급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은행은 다음과 같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1. 선하증권에 선박명이 기재되지 않았고, 운송인의 서명도 없었습니다. 이는 명백한 서류상의 하자입니다. (UCP 제27조)
  2. 수입업체로부터 선적 서류 위조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았음에도,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수입업체는 수출업체와 주고받은 서신, 위조되기 전의 선하증권 사본 등을 은행에 제출하며 위조 가능성을 알렸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하여 법원은 은행이 선적서류 심사에 필요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은행은 매입은행의 심사의무 이행 여부와 관계없이, 스스로 선적서류를 꼼꼼히 살폈어야 할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은행과 결제은행 사이의 내부적인 결제 수권 관계 역시 은행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판례는 신용장 거래에서 은행의 선적서류 심사의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은행은 단순히 서류만 형식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위조나 사기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사례입니다.

참조조문: 신용장통일규칙(UCP) 제15조, 제16조, 제17조, 제21조, 제27조 참조판례: 대법원 1977.4.26. 선고 76다956 판결, 1980.1.15. 선고 78다1015 판결

※ 이 글은 법적 자문이나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최신 법률 정보는 반드시 재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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