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말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은행에서 나오는 길에 핸드백을 날치기 당했는데, 안에는 300만원이 든 예금통장, 도장, 비밀번호 적힌 수첩, 주민등록증까지 모두 들어있었어요. 😱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은행에도 사고 신고를 하러 갔는데, 세상에… 제가 은행에 들어가기 직전에 누군가 제 통장과 도장, 주민등록증을 들고 와서 돈을 찾아갔다는 겁니다! 통장은 제 이름인데 남자가 돈을 찾아갔다는데, 이런 경우에도 은행은 책임이 없는 걸까요? 너무 억울합니다.
은행 측에서는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쳤다"며 책임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관련 법과 판례를 바탕으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핵심은 '채권의 준점유자'
법적으로 은행은 진짜 예금주에게 돈을 지급해야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진짜 예금주처럼 보이는 경우, 즉 '채권의 준점유자'에게 돈을 지급했더라도 은행에 잘못이 없을 수 있습니다. 민법 제470조에 따르면 채권의 준점유자에게 돈을 지급한 것이 선의이고 과실이 없다면 유효한 지급으로 인정됩니다.
채권의 준점유자: 쉽게 말해, 돈을 지급하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돈을 받아갈 권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입니다. 예금통장, 도장, 주민등록증 등을 가지고 있으면 전형적인 채권의 준점유자로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본인이 예금주라고 주장하지 않고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대법원 2004. 4. 23. 선고 2004다5389 판결)
선의 & 무과실: 단순히 돈 받아갈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적극적으로 진짜 권리자라고 믿었어야 하고 (선의), 그렇게 믿는 데에 아무런 잘못이 없어야 합니다 (무과실). (대법원 1999. 4. 27. 선고 98다61593 판결) 그리고 이를 증명할 책임은 은행에 있습니다. (대법원 2006. 12. 21. 선고 2004다41194 판결)
판례를 살펴보면…
대법원은 예금주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통장과 도장을 가지고 돈을 찾아가려 할 때, 은행이 인감, 비밀번호, 주민등록증의 호주까지 확인했다면 은행의 잘못이 없다고 판결했습니다.(대법원 2004. 4. 23. 선고 2004다5389 판결)
또한, 도난당한 통장에서 여러 번 돈이 인출된 경우라도, 은행이 단순 확인 외에 추가적인 확인 의무를 갖기 위해서는 뭔가 수상한 점이 있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비밀번호까지 일치하면 은행이 의심하기 어렵다는 점, 금융거래의 편리성, 예금자의 비밀번호 관리 책임 등을 고려한 것입니다.(대법원 2007. 10. 25. 선고 2006다44791 판결)
예금주도 아니고 통장도 없는 사람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채권의 준점유자로 볼 수 없다는 판결도 있습니다. (대법원 2006. 12. 21. 선고 2004다41194 판결)
결론적으로…
제 경우, 훔쳐간 사람이 제 통장, 도장, 주민등록증, 심지어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었고, 은행이 통상적인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쳤다면, 은행의 과실을 묻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안타깝지만, 비밀번호 관리 등 개인적인 주의가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물론, 은행이 본인 확인을 소홀히 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겠죠. 각 사례별로 상황이 다를 수 있으니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 폰뱅킹이나 PC뱅킹의 경우에는 자금이체 시점뿐 아니라 이전의 등록 과정 등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판단한다는 점도 알아두세요. (대법원 1998. 11. 10. 선고 98다20059 판결, 대법원 2006. 12. 21. 선고 2004다41194 판결)
민사판례
도난된 통장으로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지점에서 인출이 이루어졌을 때, 은행은 통장과 비밀번호가 일치하면 인출을 허용해야 하며, 추가적인 확인 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만 발생한다는 판결.
민사판례
타인에게 주민등록증을 빌려준 예금주, 주민등록증을 도용하여 폰뱅킹으로 예금을 인출한 사기범, 본인 확인을 소홀히 한 은행 모두 책임이 있으며, 이들은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연대하여 은행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과실상계는 공동불법행위자 전체에 대한 은행의 과실 비율로 계산해야 한다.
민사판례
예금주가 인감도장에 비밀번호를 적어두고 타인에게 예금인출 심부름을 시켰다는 이유만으로 사기단의 은행 사기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판결.
민사판례
사실혼 관계에 있던 사람이 위조한 인감과 정확한 비밀번호로 예금을 인출한 경우, 은행 직원이 육안으로 인감을 확인하고 비밀번호가 일치하면 은행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상담사례
타인이 내 통장에서 돈을 인출했더라도 그가 진짜 주인처럼 보였다면(채권의 준점유자) 은행은 책임을 면할 수 있으므로, 금융 정보 관리와 대리 위임에 주의해야 한다.
민사판례
은행은 예금 지급 시 예금주가 맞는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예금을 잘못 지급하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