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번호:
2001다5296
선고일자:
20020628
선고:
선고
법원명:
대법원
법원종류코드:
400201
사건종류명:
민사
사건종류코드:
400101
판결유형:
판결
[1] 종중의 명칭 사용이 관습에 어긋난다는 점만으로 바로 그 실체를 부인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2] 소제기 당시 종중의 명칭이 마치 종중 유사단체인 것처럼 표시하였으나 소장의 청구원인에서 고유한 의미의 종중임을 밝히고 있고 그 후 당사자의 표시를 고유한 의미의 종중과 같이 변경한 경우, 그 종중이 고유한 의미의 종중이 아니라 종중 유사단체에 불과하다거나, 소제기시 종중 유사단체임을 자인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라고 한 사례 [3] 고유 의미의 종중의 의의와 그 판단 기준 및 종중규약의 내용이 종중의 본질에 반한다 하여 그 종중이 고유 의미의 종중이 아니라고 추단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1] 어느 종중의 명칭 사용이 비록 명칭 사용에 관한 관습에 어긋난다고 하여도 그 점만 가지고 바로 그 종중의 실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2] 소제기 당시 종중의 명칭이 마치 종중 유사단체인 것처럼 표시하였으나 소장의 청구원인에서 고유한 의미의 종중임을 밝히고 있고 그 후 당사자의 표시를 고유한 의미의 종중과 같이 변경한 경우, 그 종중이 고유한 의미의 종중이 아니라 종중 유사단체에 불과하다거나, 소제기시 종중 유사단체임을 자인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라고 한 사례. [3] 고유 의미의 종중이란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이상의 남자를 종원으로 하여 구성되는 자연발생적인 종족집단체로서 그 성립을 위하여 특별한 조직행위를 필요로 함이 없이 관습상 당연히 성립하는 것으로, 고유 의미의 종중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는 종중의 목적, 그 성립과 조직의 경위, 구성원의 범위와 자격 기준, 종중 규약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인바, 이미 성립된 종중의 종원 중 일부가 주동이 되어 종중 규약을 마련하고 총회를 소집하여 대표자를 선출하였다는 사정만으로 바로 종중과는 별개의 단체를 구성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이는 이전부터 내려오던 종중을 조직화하는 과정상의 착오일 수도 있는 만큼, 이 경우 일부 종원의 자격을 임의로 제한한 종중 규약은 종중의 본질에 반하여 무효라고 볼 여지가 있으므로, 규약상 이와 같은 내용이 종중의 본질에 반한다 하여 바로 그 종중이 고유 의미의 종중이 아니라고 추단할 것은 아니다.
[1] 민법 제31조 / [2] 민법 제31조 / [3] 민법 제31조
[1] 대법원 1989. 12. 26. 선고 89다카14844 판결(공1990, 449), 대법원 1992. 7. 24. 선고 91다42081 판결(공1992, 2524), 대법원 1996. 2. 23. 선고 95다1316 판결(공1996상, 1044) /[3] 대법원 1992. 9. 22. 선고 92다15048 판결(공1992, 2964), 대법원 1992. 12. 11. 선고 92다18146 판결(공1993상, 445), 대법원 1995. 9. 15. 선고 94다49007 판결(공1995하, 3375), 대법원 1996. 2. 13. 선고 95다34842 판결(공1996상, 939)
【원고,상고인】 고창 오씨 박천공파 종친회 (소송대리인 변호사 최영철) 【피고,피상고인】 오준룡 외 9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삼흥종합법률사무소 담당변호사 신성철 외 3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2000. 12. 13. 선고 99나55344 판결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본다. 1. 원심판결과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가. 고창 오씨 10세손인 봉사공 오경복(吳慶福)은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그 중 둘째아들인 운학(雲鶴)의 후손으로 16세손인 박천공 오명계(吳命季)가 있고, 그 슬하에 태광(泰光), 태민(泰敏)의 아들 형제가 있었다. 나. 이 사건 임야에는 오명계를 비롯하여 그 후손들의 묘가 20여 기 설치되어 있는데, 오명계의 후손들은 파주시 일대에 거주하는 장남 태광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매년 음력 10. 15. 오명계를 비롯한 조상들의 묘에 모여 시제를 지내고 종중 대소사를 논의하여 왔다. 오명계의 차남인 태민의 후손들은 태민의 다음 대에 이르러 소식이 두절되었고, 족보에도 태민의 장남인 희복만 등재되어 있던 중 대종회를 통하여 연락이 되어 1987년 및 1988년 시제에 태민의 후손들도 일부 참석하였다. 다. 이 사건 임야는 원래 오명계의 7세 장손인 오준상{吳俊相, 6세 장손인 백부 오원순(吳元淳)이 아들이 없어 양자로 입적됨}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되어 있었는데, 6ㆍ25사변으로 등기부가 소실되자, 1971. 2. 10. 당시 시행 중이던 임야소유권이전등기등에관한특별조치법에 의하여 오준상의 장남인 오길섭(吳吉燮), 차남인 오진섭(吳鎭燮), 생가 기준으로 종손자인 피고 오준룡(吳俊龍, 仲燮의 장남, 원심판결의 '생가 기준으로 당질'이라는 판시는 오기로 보인다.) 등 3인 공동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되었다. 그 후 1995. 8. 2. 이 사건 임야 중 일부가 파주시에 협의매수되면서 오길섭, 오진섭의 지분에 관하여는 각각 1984. 1. 15. 자 협의분할 재산상속 또는 1988. 9. 25. 자 재산상속을 원인으로 피고 오준룡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들 앞으로 원심 판시 지분 비율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각 경료되었다. 라. 이 사건 임야 중 일부에 대한 협의매수보상금이 피고들에게 지급되면서부터 이 사건 임야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종중과 피고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게 되었는바, 그 과정에서 ① 1997. 11. 30. 태광의 후손 중 연고항존자인 오연상이 태광의 후손들에게만 구두로 통지하여 종중 총회를 소집한 가운데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그 총회 결의로 종중 규약을 정식으로 마련하였는데, 이 규약에 의하면, 종중원의 범위는 고창 오씨 봉사공의 후손으로서 파주지역에 거주하는 자손으로 되어 있고, ② 1998. 2. 28. 오연상이 소집한 종중 총회에서 종중의 명칭을 '고창 오씨 박천공파 종친회'로 변경하였으며, 종중원의 범위에서 태민의 후손들을 제외시킨 채 태광의 후손에 국한한다는 결의가 있었다가, ③ 1998. 5. 11. 이 사건 임야에 대하여 명의신탁해지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및 수용보상금 반환을 구하는 이 사건 소가 제기되었고, ④ 1998. 10. 18. 오연상이 소집한 종중 총회에서 회장 연임결의가 있었으며, ⑤ 1999. 7. 25. 오연상이 소집한 종중 총회에서 규약을 다시 개정하여 종중원의 범위를 오명계의 후손 모두를 포함하는 것으로 정하였고, ⑥ 1999. 11. 13. 연락 가능한 태민의 후손 11인에게도 총회 소집을 통지하여 태광의 후손 14인과 태민의 후손 7인이 모인 가운데 그 동안의 종중 규약 제정 및 개정, 임원선출 기타 이 사건 소제기행위 등을 포함한 모든 의결사항을 추인하였으며, ⑦ 2000. 11. 5. 태민의 후손까지 포함하였을 때의 연고항존자인 오상덕이 소집한 총회에서 이와 동일한 내용의 결의가 있었다. 2. 원심은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기초로, 오명계의 자손들 중 태민의 후손들은 초기에 원고 종중의 근거지인 파주지역을 떠나 연락이 두절되어 그 후손의 존재 여부조차 불분명한 상태였던바, 최근에 이르러서야 연락이 닿아 시제에 참석하고 종중 총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으므로, 오명계의 후손들을 대상으로 하여 볼 때, 오명계를 시조로 하는 종중과 그 자인 태광을 시조로 하는 종중 등 적어도 두 종중이 성립될 수 있고, 이 두 종중은 전혀 별개의 존재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전제한 다음, 원고 종중이 이 사건 소제기 당시에는 '고창 오씨 봉사공파 재파 종친회(高敞吳氏奉事公派在坡宗親會)'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구성원을 고창 오씨 봉사공의 후손으로서 파주지역에 거주하는 자손으로 국한하였다가, 소송 진행 도중 오명계의 후손 가운데 태광의 자손만으로 이루어진 종중이라고 주장하였고, 변론종결시에는 다시 태민의 후손을 포함한 오명계의 후손 전부를 포함하는 종중이라고 주장하고 있음에 비추어, 이 사건 임야가 종중에서 오준상 또는 오길섭 외 2인의 등기명의인에게 명의신탁한 종중재산이라 하더라도, 그 명의신탁의 주체가 원고가 주장하여 온 세 가지의 종중 또는 종중 유사단체 가운데 오명계의 후손 전부를 구성원으로 하는 원고 종중이라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고, 오히려 명의신탁 당시에는 오명계의 후손들 중 태민의 후손들은 그 존재 여부조차 불분명하였고, 태광의 후손들만이 봉제사를 하여 온 점에 비추어 명의신탁의 주체는 태광의 후손만으로 이루어진 종중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고 판단하였다. 3. 그러나 원심의 이와 같은 사실인정과 판단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수긍할 수 없다. 가. 종중의 명칭과 관련하여 어느 종중의 명칭 사용이 비록 명칭 사용에 관한 관습에 어긋난다고 하여도 그 점만 가지고 바로 그 종중의 실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대법원 1992. 7. 24. 선고 91다42081 판결 참조). 이 사건 소제기 당시 원고 종중의 명칭이 '고창 오씨 봉사공파 재파 종친회'라고 되어 있어 마치 원고 종중이 봉사공의 후손 중 파주 일대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종중 유사단체인 것처럼 보이나, 소장의 청구원인 첫머리에 "원고 종중은 오명계의 후손으로 구성된 모임으로 조선시대부터 매년 음력 10. 15. 이 사건 임야의 오명계 묘에서 시제를 지내고 종중 대소사를 의논하여 왔다."고 기재하여 원고 종중이 오명계를 공동선조로 하는 후손들을 구성원으로 하여 선조의 분묘수호, 제사 등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고유한 의미의 종중임을 밝히고 있고, 그 후 원심에 이르러 당사자의 표시를 현재와 같이 '고창 오씨 박천공파 종친회'로 변경하였는바, 그렇다면 비록 이 사건 소제기 당시 원고 종중의 명칭이 실체와는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로써 원고 종중이 고유한 의미의 종중이 아니라 종중 유사단체에 불과하다거나, 이 사건 소제기시 원고가 종중 아닌 그 유사단체임을 자인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 나. 종중의 성격 및 구성원 범위와 관련하여 고유 의미의 종중이란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이상의 남자를 종원으로 하여 구성되는 자연발생적인 종족집단체로서 그 성립을 위하여 특별한 조직행위를 필요로 함이 없이 관습상 당연히 성립하는 것으로, 고유 의미의 종중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는 종중의 목적, 그 성립과 조직의 경위, 구성원의 범위와 자격 기준, 종중 규약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인바, 이미 성립된 종중의 종원 중 일부가 주동이 되어 종중 규약을 마련하고 총회를 소집하여 대표자를 선출하였다는 사정만으로 바로 종중과는 별개의 단체를 구성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이는 이전부터 내려오던 종중을 조직화하는 과정상의 착오일 수도 있는 만큼, 이 경우 일부 종원의 자격을 임의로 제한한 종중 규약은 종중의 본질에 반하여 무효라고 볼 여지가 있으므로, 규약상 이와 같은 내용이 종중의 본질에 반한다 하여 바로 그 종중이 고유 의미의 종중이 아니라고 추단할 것은 아니다( 대법원 1996. 2. 13. 선고 95다34842 판결 등 참조). 원심이 확정한 바와 같이, 이 사건 임야를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하자, 처음 태광의 후손들만이 모여 종중 총회를 열어 정식으로 규약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종중원의 범위를 봉사공의 후손 중 파주지역에 거주하는 자손으로 정하고, 한 때 박천공 오명계의 차남인 태민의 후손들을 종중원에서 제외시킨다는 결의를 하기도 하였으나, 무엇보다도 종중원들이 매년 시제를 모신 조상 중 제일 선대가 박천공이고, 그 장남인 태광의 후손들이 주로 파주 일대에서 거주하면서 시제에 참여하여 왔다는 점에서 처음 마련된 규약상 종중원의 범위에 관한 규정은 박천공의 후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못 볼 바가 아니며, 종중 총회 소집시 태민의 후손들에게 통지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1989. 이후로는 시제에 참석하지 않는 등 종사에 관심을 보이지 아니한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이고, 일부 종원의 자격을 임의로 제한하였다는 점에서 이 부분 규약은 종중의 본질에 반하여 무효라고 볼 여지가 있으며, 그 후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 종중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하면서 그 명칭을 종중 유사단체처럼 정하였으나, 청구원인에서는 원고 종중이 박천공의 후손들로 구성된 종중임을 명확히 하였고, 나아가 그 명칭을 바로잡고 규약을 개정하여 종중원의 범위를 박천공의 후손으로 명시하였는바,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 종중이 태광의 후손들만으로 구성된 종중이라거나, 오명계의 후손 중에 원고 종중의 종중원 자격이 배제되는 자가 있을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다. 이 사건 임야의 소유관계에 대하여 기록에 의하면, ① 우선, 이 사건 임야에는 원고 종중의 공동선조인 박천공 오명계를 비롯하여 그 후손들의 묘 20여 기가 설치되어 있고, ② 이 사건 임야의 원래 소유명의자인 오준상은 원고 종중의 종손이며, ③ 오준상의 장남인 오길섭이 1971. 2. 10. 그 당시 원고 종중의 사실상 대표자로서 종사를 주관하던 6촌간인 오중섭과 함께 전쟁중에 소실된 등기부를 복구하기 위하여 이 사건 임야에 관하여 당시 시행중이던 임야소유권이전등기등에관한특별조치법에 의하여 소유권보존등기를 경료하면서 자신의 사후에 자손들이 선대의 묘가 설치된 이 사건 임야를 처분하는 것을 막아 이를 영구히 보존하기 위하여 자신과 동생인 오진섭 및 오중섭의 장남인 피고 오준룡 등 3인 공동명의로 하였고, ④ 오중섭은 장남인 피고 오준룡 몫의 토지수용보상금을 별도의 통장을 만들어 예금해 두고, 차후 대토를 매입하는 등의 종사에 사용토록 하기 위하여 그 통장을 원고 종중 총무에게 보관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한편 오명계의 후손들 가운데 원고 종중 이외에 태광을 공동선조로 하는 하위종중이 따로 존재한다거나 어떠한 활동을 한다고 볼 아무런 자료도 없는바, 이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임야는 박천공 오명계를 공동선조로 하는 원고 종중의 소유로서, 당초 장손인 오준상 앞으로 명의신탁하여 그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경료하였다가, 등기부가 소실되자 다시 오길섭 외 2인 앞으로 명의신탁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고, 가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오준상의 재산상속인으로서 오길섭 등이 이 사건 임야를 원고 종중에 증여한 것으로 볼 여지도 없지 아니하다. 라. 그렇다면 이 사건 임야를 명의신탁한 주체가 원고 종중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배척한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에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하거나, 종중의 성립 및 종중 재산의 명의신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고, 이는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상고이유 중 이 점을 지적하는 부분은 이유 있다. 3. 결 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케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윤재식(재판장) 송진훈(주심) 변재승 이규홍
상담사례
종중 명칭이 관습과 달라도 실제 종중 활동을 하고 조직을 갖췄다면 종중으로 인정될 수 있다.
민사판례
종중이 소송을 제기하려면, 그 종중이 실제로 존재하고 대표자가 적법한 자격을 갖춰야 합니다. 또한, 종중 규약은 모든 종원을 공평하게 대해야 하며, 일부 종원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규약을 만든다고 해서 기존 종중의 재산이 새로 만들어진 단체의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사판례
종중은 조직적인 절차 없이도 관습적으로 성립하며, 회칙의 일부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종중 자체가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
민사판례
이 판례는 종중이라는 단체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격(당사자 능력)을 가지려면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지, 그리고 하급 법원이 종중의 실체 존재 여부를 잘못 판단하여 소송을 부적법하게 각하한 경우 대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즉, 종중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단체로서 소송을 진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다룬 판례입니다.
민사판례
종중 이름이 일부 후손만 사는 지역 이름이더라도, 실제로 모든 후손들이 제사, 재산 관리 등 종중 활동을 함께 했다면, 그 지역 사람들만의 종중이 아니라 전체 후손들의 종중으로 인정된다는 판결.
민사판례
종중의 이름에 특정 조상의 이름이나 직함이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어떤 조상의 제사를 지내고, 누구의 묘를 관리하며, 어떤 사람들이 구성원으로 활동하는지를 살펴봐야 진짜 어떤 종중인지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