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한 젊은이는 신병 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배치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 아래 자행되는 선임병들의 끔찍한 구타와 가혹행위, 끊이지 않는 욕설과 폭언이었습니다. 입대 전 학생운동 경력까지 문제 삼으며 더욱 심한 가혹행위에 시달린 그는 결국 전입 열흘도 되지 않아 부대 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망인의 유족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진상 규명을 통해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009년,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국가는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과연 국가의 주장은 정당한 것일까요?
소멸시효, 언제나 정당한가?
소멸시효란 일정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그 권리가 소멸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소멸시효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을 **신의성실의 원칙(민법 제2조)**에 위배되는 권리남용으로 판단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의 판단 이유
객관적인 권리행사 장애: 군의 폐쇄적인 특성상, 군 외부의 민간인이 군 내부의 불법행위를 인지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더욱이 이 사건에서는 사고 직후 부대 지휘관들의 함구령, 헌병대의 부실 수사 등으로 진실이 은폐되었습니다. 유족들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통해서야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되었고, 그 전까지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장애가 존재했습니다. (민법 제166조 제1항)
국가의 책임: 병영문화 개선의 책임을 지는 국가가 오히려 가혹행위를 방지하지 못했고,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멸시효를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정의와 공평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판결의 의미
이 판결은 소멸시효 제도를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되며,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공권력에 의한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경우, 국가는 소멸시효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조조문:
참조판례:
민사판례
군 복무 중 선임병의 가혹행위 등으로 자살한 사건에서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국가의 주장이 권리남용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
민사판례
군 의문사 진상규명 결정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때, 진상규명 결정일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했더라도 무조건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사유가 해소된 후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해야 하며, 이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짧아야 하고, 불법행위 손해배상의 경우 최대 3년을 넘을 수 없다.
민사판례
학도의용군으로 복무 후 이중징집된 원고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정당한지, 소멸시효의 기산일은 언제인지에 대한 판결입니다. 대법원은 원심이 소멸시효 관련 판단을 잘못했다고 보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파기환송했습니다.
민사판례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났더라도, 국가가 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배상을 했다면, 국가는 해당 공무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특히 공무원이 사건 은폐를 적극적으로 주도하지 않았다면 더욱 그렇다.
상담사례
군 사망사건 은폐 후 국가가 소멸시효에도 불구하고 배상한 경우, 은폐에 소극적으로 가담한 병사에게는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
민사판례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국가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핵심입니다. 단, 진실규명결정 이후 상당한 기간(최대 3년) 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또한, 소송 과정에서 새로운 피해 사실을 주장하는 경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