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선을 앞두고 뜨거웠던 후보 검증 토론회. 한 후보에게 시민단체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질문자는 시민단체가 특정 세력에 반대하고 폭력적인 위협을 가한다고 주장하며, 기업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갈취한다는 의혹까지 제기했습니다. 이 발언은 생방송으로 전국에 퍼졌고, 월간지에도 실렸습니다. 해당 시민단체들은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정 공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쟁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사건의 핵심은 언론의 자유와 명예훼손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그어야 하는가였습니다. 시민단체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은 언론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타인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사실의 적시'란 무엇인가? 직접적인 표현뿐 아니라 간접적, 우회적 표현이라도 특정인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구체성을 갖추면 '사실의 적시'로 인정됩니다. (민법 제751조, 헌법 제21조 제4항, 대법원 2000. 7. 28. 선고 99다6203 판결, 대법원 2002. 1. 22. 선고 2000다37524,37531 판결 등)
명예훼손 여부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기사의 전체적인 취지, 사용된 어휘, 문구의 연결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일반 독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당시 사회적 흐름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민법 제751조, 헌법 제21조 제4항, 대법원 2001. 1. 19. 선고 2000다10208 판결, 대법원 2002. 1. 22. 선고 2000다37524,37531 판결 등)
공적 사안과 사적 사안의 차이는?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대한 표현은 사적인 영역에 대한 표현보다 언론의 자유가 더 폭넓게 보장됩니다. 피해자가 명예훼손 위험을 자초했는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민법 제751조, 헌법 제21조 제4항, 대법원 2002. 1. 22. 선고 2000다37524,37531 판결)
법원의 판단은?
법원은 해당 발언이 시민단체의 도덕성과 순수성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내용이며, 발언자가 명예훼손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발언을 강행한 점 등을 고려하여, 언론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선 명예훼손이라고 판결했습니다. 비록 공적 사안에 대한 발언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심히 침해하고 보복 감정이나 비방 목적이 인정된다면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민법 제751조)
민사판례
한 월간지가 KBS 프로그램 제작자를 '주사파'로 지칭한 기사를 게재하여 명예훼손 소송이 제기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기사의 전체 맥락과 공적 인물에 대한 정치적 이념 표현의 자유를 고려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특히 '주사파'라는 표현은 단순 의견이 아닌 사실 적시로 보아야 하지만, 공인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의혹 제기는 넓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므로, 기사 내용 중 프로그램 해석을 주사파적 해석으로 단정하고 제작자를 주사파로 지목한 부분만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민사판례
조선일보가 광우병 관련 보도에서 한 교수의 회사 관련 내용을 보도했는데, 교수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 대법원은 기사 내용이 일부 부정확하더라도 공익을 위한 것이고, 전체 맥락에서 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원심을 파기환송함.
민사판례
조선일보가 공정위 과장의 계좌에 다단계 업체 자금이 입금된 사실을 보도하면서, 마치 공정위 과장이 부정한 돈을 받은 것처럼 암시하여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를 명령한 판결.
민사판례
언론사의 보도로 명예가 훼손되었을 때, 언론사 대표나 간부처럼 직접 기사를 쓰지 않은 사람도 무조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도 제작 과정에 실제로 관여했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합니다.
형사판례
대통령 후보였던 A를 '공산주의자'라고 지칭한 발언은 의견 표명에 해당하며,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
민사판례
KBS가 미디어오늘의 기사가 자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대법원은 기사 내용이 언론의 자유 보호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하여 KBS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