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일자: 1998.03.13

민사판례

신용장 대금 지급 거절, 과연 정당할까?

중국 기업 A는 한국 기업 B에게 바지를 수출하기로 계약하고, B는 국민은행에 신용장 개설을 의뢰했습니다. 신용장에는 상업송장과 포장명세서 원본 각 1통과 사본 각 2통을 포함한 서류들을 제시해야 대금을 지급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A는 3차례에 걸쳐 바지를 선적하고 서류를 제출했는데, 이때는 사본만 제출했음에도 국민은행은 문제 삼지 않고 대금을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4차 선적 후에도 A가 사본만 제출하자 국민은행은 신용장 조건 불일치를 이유로 대금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이에 A는 국민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과연 누구의 주장이 옳을까요?

쟁점은 바로 '신의칙 위반' 여부였습니다. 앞서 3번이나 사본만으로 대금을 지급해놓고 갑자기 4차 선적 때는 원본을 요구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반되는지가 핵심이었습니다.

법원은 국민은행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핵심은 '화물선취보증서(Delivery Order Guarantee)'에 있었습니다. 1~3차 선적 때 B는 물건을 먼저 받기 위해 국민은행에 화물선취보증서 발급을 요청했습니다. 이 보증서는 서류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물건을 먼저 내어주도록 하는 일종의 약속 어음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은행이 나중에 서류 문제로 대금 지급을 거부하면, B는 운송인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은행은 B로부터 확약을 받고 대금을 지급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4차 선적 때는 B가 화물선취보증서 발급을 요청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금 지급 거절을 요청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행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대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즉, 앞선 3차례의 대금 지급은 B의 요청과 확약에 따른 것이었기에 4차 선적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관련 법 조항 및 판례

  • 민법 제2조 (신의성실):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 신용장통일규칙(1993. 제5차 개정) 제13조, 제14조, 제20조 (신용장 조건과 서류의 일치)
  • 상법 제129조, 제820조 (신용장 관련 규정)
  • 대법원 1985. 5. 28. 선고 84다카697 판결

이 판례는 신용장 거래에서 신의칙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단순히 과거의 관행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과 거래 당사자들의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특히 화물선취보증서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존재하는 경우, 이를 충분히 고려하여 신의칙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 이 글은 법적 자문이나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최신 법률 정보는 반드시 재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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