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드라마, 어디까지 허용될까? - 허구와 명예훼손 사이

역사드라마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과거를 생생하게 보여주지만, 때로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묘사가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 사건과 인물을 바탕으로 허구적인 요소를 더하다 보니, 역사적 인물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요. 오늘은 역사드라마의 허구적 표현과 명예훼손의 경계에 대한 법원의 판단 기준을 살펴보겠습니다.

2007년 방영된 드라마 '서울 1945'는 해방 전후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배경으로,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들을  짜여진 각본대로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 장택상 등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문제가 되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었죠. 검찰은 드라마의 특정 장면들이 이승만, 장택상을 친일파로 묘사하고, 여운형 암살을 지시한 것처럼 보이게 하여 고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드라마 제작진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역사드라마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며, 작가적 해석과 허구적 요소가 필연적으로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죠. 물론, 예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역사적 인물의 명예를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법원은 역사드라마에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다양한 요소들을 제시했습니다.

법원이 제시한 판단 기준 (형법 제308조 관련)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적시된 사실의 내용: 어떤 내용이 역사적 인물의 명예를 훼손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 진실이라고 믿게 된 근거 및 자료의 신빙성: 제작진이 어떤 근거로 해당 내용을 사실이라고 믿었는지, 그 자료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 예술적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보호의 균형: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가치이지만, 고인의 명예를 침해할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 역사드라마의 특성: 역사드라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므로, 허구적 요소가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 드라마의 주된 제작 목적: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인지, 아니면 단순히 오락을 위한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인지 배경인지 여부: 등장인물의 비중과 역할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실존 인물과 허구적 이야기의 비중: 실제 사실과 허구적 내용의 비율을 고려하여 사실 왜곡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 묘사된 사실이 허구로 승화되었는지 여부: 시청자가 허구임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묘사되었는지가 중요합니다.

법원은 '서울 1945'의 경우, 실존 인물들이 이야기 전개의 중심이 아니었고, 논란이 된 장면만으로는 고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드라마라는 매체의 특성상 허구적 요소가 필연적으로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무죄를 선고했죠.

이 판례는 역사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창작의 자유와 역사적 인물의 명예 보호 사이의 균형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해석과 허구적 요소의 도입은 드라마의 재미를 더할 수 있지만, 역사적 인물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