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일자: 1998.02.27

민사판례

드라마에서 김구 선생 암살 배후로 묘사된 인물, 명예훼손일까?

역사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가끔 실존 인물이 등장하곤 합니다. 그런데 만약 드라마에서 특정 인물을 범죄의 배후로 묘사했을 경우, 그 인물이나 유족이 명예훼손으로 드라마 제작사를 고소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판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사건의 개요

한국방송공사(KBS)는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를 방영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특정 인물(이하 'A')이 김구 선생 암살의 배후로 묘사되었고, A의 유족은 KBS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쟁점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드라마 제작사인 KBS에 명예훼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였습니다. 만약 KBS가 드라마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고의나 과실이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원의 판단

1심과 2심 법원은 KBS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대법원 또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며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법원은 이 드라마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을 다루었고, 제작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단순히 흥미 위주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공익적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는가?: 법원은 KBS가 드라마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암살범의 진술, 관계자들의 증언, 국회 조사보고서 등 여러 자료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A가 암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할 근거가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구와 표현의 자유: 법원은 사건 발생 후 오랜 시간이 흘러 관련자들이 대부분 사망하고, 객관적인 자료 확보에도 한계가 있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망인이나 유족의 명예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구와 표현의 자유가 더 중요하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용 법조항 및 판례

  •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의 내용)
  • 민법 제751조 (재산 이외의 손해의 배상)
  • 형법 제310조 (위법성의 조각)
  • 대법원 1988. 10. 11. 선고 85다카29 판결
  • 대법원 1996. 5. 28. 선고 94다33828 판결
  • 대법원 1997. 9. 30. 선고 97다24207 판결

결론

이 판례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드라마에서 실존 인물을 묘사할 때, 제작사가 충분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특히 오랜 시간이 지난 역사적 사건의 경우, 망인의 명예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구와 표현의 자유가 더욱 중요하게 고려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법적 자문이나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최신 법률 정보는 반드시 재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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