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살펴볼 사건은 주금 가장납입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 돈을 빌린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은행원. 과연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사건의 개요
회사를 설립하려는 乙(을)은 甲(갑)에게서 회사 설립 자금을 빌렸습니다. 이는 실제 자본금이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한 가장납입이었습니다. 乙은 회사 설립 직후, 갑에게 빌린 돈을 돌려주기 위해 돈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습니다. 그런데 이 계좌는 乙이 통장과 도장을 甲에게 맡겨둔 상태였습니다. 문제는 乙이 이 계좌에 예약이체를 설정해두었다는 것입니다. 주금납입은행 직원인 丙(병)은 이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고, 결국 乙은 이체된 돈을 예약이체를 통해 빼돌렸습니다.
1심과 2심의 판단
1심과 2심 법원은 은행원 丙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丙은 甲이 乙에게 가장납입용 자금을 빌려주고 바로 회수하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乙이 예약이체를 통해 돈을 빼돌릴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丙은 계좌 이체 전에 예약이체 설정 여부를 확인했어야 할 주의의무를 게을리했다고 보았습니다. 즉, 丙이 乙의 사기 행위를 방조했다는 이유로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그러나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대법원은 민법 제760조 제3항에서 말하는 '방조'는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모든 행위를 말하며, 과실에 의한 방조도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방조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방조행위와 불법행위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 1998. 12. 23. 선고 98다31264 판결, 대법원 2007. 6. 14. 선고 2006다78336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丙에게 그런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주금을 납입받은 은행은 회사 대표가 적절한 절차를 거쳐 출금을 요구하면 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丙은 乙이 회사 설립 서류를 제출하고 주금 이체를 요구하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체를 진행한 것뿐입니다.
설령 丙이 甲이 돈을 회수하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회사 대표의 정당한 이체 요구를 거부할 근거는 없습니다. 또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丙은 예금주도 아닌 甲의 처에게 예약이체 설정 여부를 알려줄 의무도 없었습니다. 丙이 乙의 사기 행위를 알고 있었거나 예상했어야 한다고 볼 증거도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丙에게 乙의 사기 행위를 방지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환송했습니다.
핵심 쟁점: 은행원의 주의의무 범위
이 사건의 핵심은 은행원의 주의의무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입니다. 대법원은 은행원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업무를 처리한 이상, 예금주 아닌 제3자의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까지 요구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판결은 금융기관의 실무 관행과 금융실명제의 취지를 고려한 판단으로 보입니다.
민사판례
타인의 불법행위를 도와 손해가 발생하면, 도운 사람도 가담 정도와 상관없이 손해 전액에 대한 배상 책임을 진다. 피해자의 부주의를 이용한 불법행위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의 부주의를 이유로 책임을 줄여달라고 주장할 수 없다.
민사판례
타인의 이름을 빌려 주식을 인수하고, 돈을 잠깐 넣었다 빼는 방식(가장납입)으로 회사를 설립한 경우, 실제로 돈을 낸 사람만 주주이며, 이름만 빌려준 사람은 주금 납입 책임이 없다.
민사판례
은행 직원이 본인 확인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계좌를 개설해 줘서 타인의 명의가 도용된 계좌(모용계좌)가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사기 범죄가 발생하여 제3자 또는 명의가 도용된 사람이 손해를 입었다면, 은행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민사판례
빌린 돈으로 회사 자본금을 납입했더라도, 그 주주를 명의만 빌려준 차명주주로 볼 수는 없다.
민사판례
타인의 이름을 도용해서 계좌를 개설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은 최소한의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소홀히 하여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은행도 책임을 져야 한다.
민사판례
다른 사람 이름으로 은행에 돈을 넣어도, 일단 통장에 적힌 이름의 사람이 예금주로 간주됩니다. 은행은 예금주와 돈을 넣은 사람 사이의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이러한 원칙을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