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세 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관련 판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판례는 전세 사기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사건의 개요
피고인들은 자금 없이 오피스텔 등을 매입한 후, 매매대금보다 높은 전세보증금을 받아 차액을 챙겼습니다. 이들은 세금 부담 때문에 급매하려는 집주인들에게 접근하여 전세보증금을 정상적으로 인수할 것처럼 속여 오피스텔과 전세 차익을 편취했다는 혐의(사기)로 기소되었습니다. 즉,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능력도 없으면서 마치 있는 것처럼 집주인들을 속였다는 것이죠.
원심의 판단
원심은 피고인들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숨긴 채 계약을 진행했으므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집주인들은 피고인들이 전세보증금을 제대로 갚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계약을 체결했고, 피고인들의 자금 능력이 계약의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이를 숨긴 것은 기망행위라고 본 것입니다.
대법원의 판단: 파기 환송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핵심 논리는 '피고인들에게 고지의무가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기죄에서 '부작위에 의한 기망'은 법률상 고지의무가 있는 사람이 상대방의 착오를 알면서도 이를 알리지 않는 경우에 성립합니다. (형법 제347조, 대법원 2000. 1. 28. 선고 99도2884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에게 그러한 고지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계약서에는 "임대차보증금을 포함한 임대인의 권리·의무를 포괄적으로 매수인이 승계한다"는 특약이 있었고, 임차인들은 대항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임대인의 지위가 피고인들에게 정상적으로 승계되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래 집주인들은 임대차보증금 반환 의무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았습니다. (대법원 1987. 3. 10. 선고 86다카1114 판결, 대법원 2013. 1. 17. 선고 2011다49523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물론 임차인이 임대인 지위 승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그럴 경우 원래 집주인이 다시 임대차보증금 반환 의무를 지게 됩니다. (대법원 1996. 7. 12. 선고 94다37646 판결, 대법원 2002. 9. 4. 선고 2001다64615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임차인들이 그러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피고인들의 변제 능력이 계약의 필수 요소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결론
이 판결은 전세 사기 유형의 범죄에서 사기죄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단순히 매수인의 변제 능력 유무만 볼 것이 아니라, 임대차 계약의 구조, 임차인의 대항력, 임대인 지위 승계 등 관련 법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형법 제30조, 제347조, 형사소송법 제308조, 제325조 참조) 특히 부작위에 의한 기망의 경우, 고지의무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8도13696 판결 참조)
형사판례
집주인은 세입자와 계약할 때, 그 집이 경매에 넘어간 상태라면 세입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설령 세입자가 등기부등본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집주인의 고지 의무는 면제되지 않습니다.
형사판례
부도 직전의 회사가 이 사실을 숨기고 대한주택보증과 임대보증금 보증약정을 맺어 이익을 취했다면 사기죄가 성립한다.
형사판례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을 때, 제3자와 맺은 신탁금지약정을 은행에 알리지 않았다고 해서 사기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대출받는 사람이 고지해야 할 의무는 상대방의 법률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사유에 한정된다.
상담사례
경매 진행 중인 집에 전세 계약을 한 경우, 배당은 어려우나 집주인에게 임차보증금반환/손해배상 청구 소송 및 사기죄 고소를 통해 보증금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형사판례
건물주로부터 월세 임대 업무를 위임받은 건물관리인이 임차인들을 속여 전세 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을 가로치면 사기죄뿐 아니라 배임죄도 성립한다.
형사판례
임차인이 실제 거주 중인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배우자 명의로 전세계약서를 변경하여 배당금을 수령했더라도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