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일자: 1991.05.14

민사판례

해상적하보험, 외국법 준거와 고지의무 위반, 그리고 행방불명된 화물

국제 해상운송에서 화물에 대한 보험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보험 계약은 복잡하고, 특히 외국 법률이 적용되는 경우 더욱 어려워집니다. 오늘은 영국법이 적용되는 해상적하보험 계약에서 발생한 분쟁 사례를 통해, 외국법 준거 약관의 효력, 고지의무 위반, 그리고 행방불명된 화물에 대한 보험금 지급 책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외국법 준거 약관, 그 효력은?

해상보험 계약에서는 분쟁 발생 시 어떤 나라의 법을 적용할지 미리 정하는 '준거법 약관'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례에서는 "보험증권 아래에서 야기되는 일체의 책임문제는 영국의 법률 및 관습에 의한다"는 영국법 준거 약관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상법과 다른 외국법을 적용하는 약관이 과연 유효할까요?

대법원은 이러한 외국법 준거 약관이 단순히 우리 상법보다 보험계약자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만으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상법 제663조, 대법원 1977.1.11. 선고 71다2116 판결, 1989.9.12. 선고 87다카3070 판결 참조) 약관이 보험자의 면책을 부당하게 돕거나 보험계약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경우에만 무효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례에서는 영국법 준거 약관이 오랜 해상보험 관행을 반영하고 거래 관계를 명확히 하는 목적이므로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

2. 중요한 사실을 숨겼다면? 고지의무 위반!

보험계약자는 보험 계약을 체결할 때 중요한 사실을 보험자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고지의무'라고 합니다. 이 사례에서 원고는 화물을 실은 선박이 출항 후 기관 고장 등 문제가 발생했다는 전문을 받았음에도 이를 숨기고 보험 조건을 변경하는 추가 약정을 체결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행위가 영국해상보험법상 고지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영국해상보험법 제18조 제2항, 제17조) 사고 발생 가능성을 암시하는 전문 수령 사실은 보험자가 보험료나 위험 인수 여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보험자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한 것은 정당하며, 우리 상법상의 제척기간( 상법 제651조)이나 인과관계( 상법 제655조)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참고로, 원고가 추가 변경 약정 당시 숨긴 정보는 사기로 인한 법률행위(민법 제110조)에도 해당하여 약정은 효력을 잃게 됩니다.

3. 행방불명된 화물, 보험금은 받을 수 있을까?

화물을 실은 선박이 행방불명되었다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 사례에서는 '분손불담보조건'(F.P.A.)의 적하보험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분손불담보조건이란, 전손(화물 전체 손실)이 아닌 일부 손해(분손)는 보상하지 않는 조건입니다.

일반적으로 분손불담보조건에서는 피보험자가 손해가 보험에서 보장하는 위험으로 발생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박이 행방불명된 경우에는 '현실전손'으로 추정되고, 이는 해상위험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국해상보험법 제58조) 따라서 보험자는 원칙적으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다만, 보험자가 손해가 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위험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입증한다면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할 수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는 원고가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손해가 보험에서 보장하는 위험으로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선주의 악행'으로 화물이 불법 매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따라서 대법원은 원심이 이러한 가능성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환송했습니다. (민사소송법 제187조)

이처럼 해상보험은 여러 법률과 판례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분야입니다. 특히 외국법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꼼꼼하게 계약 내용을 확인하고, 고지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이 글은 법적 자문이나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최신 법률 정보는 반드시 재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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