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일자: 2005.09.28

민사판례

회사정리절차와 어음 추심위임, 그리고 상계권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채권자들은 자신의 돈을 돌려받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상계인데요, 내가 회사에 빌려준 돈과 회사가 나에게 줘야 할 돈을 서로 퉁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회사정리절차가 시작되면 채권자들 사이의 공평성을 위해 상계가 제한됩니다. 오늘은 회사정리절차에서 어음 추심위임과 관련된 상계권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살펴보겠습니다.

회사정리절차 중 상계, 왜 제한될까?

회사정리절차가 진행 중인 회사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정리채권자)가 회사로부터 돈을 받아야 할 상황이 생겨도,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알면서 돈을 빌려준 이후에는 상계가 제한됩니다 (회사정리법 제163조 제2호 본문). 회사가 정리절차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미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돈을 빌려주고 나중에 상계를 주장하는 것은 다른 채권자들에게 불공평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기 에 이미 상계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 있었다면, 회사정리절차가 시작된 후에도 상계가 가능합니다(회사정리법 제163조 제2호 단서 (나)목). 이때 '전의 원인'이란 채권자에게 구체적인 상계 기대를 발생시킬 정도로 직접적인 것이어야 하며, 상계에 대한 채권자의 신뢰가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정당한 것이어야 합니다.

어음 추심위임과 상계,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이번 판례에서 쟁점이 된 것은 어음 추심위임입니다. 은행이 부도 위기에 처한 회사로부터 어음 추심을 위임받았고, 추심금을 받게 되면 회사에 돌려줘야 할 의무가 생깁니다(민법 제684조). 은행은 이 추심금을 자신이 회사에 빌려준 돈과 상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은행은 외국환거래약정서와 수출환어음매입(추심)신청서 등을 근거로 상계 기대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약관이나 신청서에 있는 일반적인 상계 조항만으로는 추심금을 담보로 제공하기로 한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회사가 어음 추심을 위임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은행에게 구체적인 상계 기대가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어음 추심은 회사가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고(민법 제689조 제1항), 실제로 추심금 전액이 은행의 대출금 상환에 사용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구체적인 상계 기대'

결국 법원은 어음 추심위임 자체만으로는 상계를 위한 '전의 원인'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추심금을 받을 권리, 즉 수임인의 인도·이전의무는 실제로 돈을 받았을 때 발생하는 것이지, 추심을 의뢰하거나 지급을 제시했다는 사실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대법원 1963. 9. 26. 선고 63다423 판결 참조). 회사정리절차에서 상계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회사정리절차 개시 신청 전에 이미 구체적인 상계 기대가 존재했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판례입니다.

참조 조문:

  • 회사정리법 제163조 제2호 (나)목
  • 민법 제492조, 제680조, 제684조, 제689조 제1항
  • 어음법 제18조, 제38조
※ 이 글은 법적 자문이나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최신 법률 정보는 반드시 재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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