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일자: 2019.09.09

일반행정판례

23년 만에 퇴직급여를 청구한 번역군무원, 결과는?

오늘은 주한미군에서 번역군무원으로 일했던 한 분의 퇴직급여 청구 소송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 분은 퇴직 후 무려 23년이나 지나서야 공무원연금공단에 퇴직급여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공단 측에서는 "5년의 시효가 지났다"며 지급을 거부했고, 결국 소송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쟁점은 바로 '소멸시효'와 '권리남용'

공단 측 주장의 핵심은 '소멸시효'입니다. 쉽게 말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나면 그 권리가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구 공무원연금법(1995. 12. 29. 법률 제511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1조 제1항에 따르면 퇴직급여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5년입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퇴직 후 23년이 지나서야 청구했으니, 공단의 주장대로라면 시효가 훌쩍 지난 것이죠.

하지만 원고 측은 공단이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이 '권리남용'이라고 맞섰습니다. 권리남용이란, 정당한 이유 없이 자신의 권리를 남용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말합니다. 민법 제2조는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에 있어서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판례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의 행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다86147 판결, 대법원 2011. 5. 26. 선고 2011두242 판결).

원고는 자신이 속했던 정보부대장이 미군으로부터 받은 퇴직금을 공무원연금 기여금으로 납부하지 않고 자신에게 직접 지급했고, 국가의 퇴직금 지급 의무가 완료되었다는 확약서까지 받았기 때문에 자신은 퇴직급여를 청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공단 역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항변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대법원은 공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원고가 퇴직급여를 청구하지 못한 것은 단지 자신이 공무원에 해당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며, 정보부대장의 잘못된 업무처리나 공단의 안내 부족이 객관적으로 권리행사를 불가능하게 만든 장애사유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원고가 동료의 유사 소송(대법원 2009. 2. 26. 선고 2006두2572 판결)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퇴직급여를 청구하지 않은 점, 이미 매년 퇴직금을 수령해왔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공단이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이 권리남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습니다. 즉, 법에 정해진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며, 이 사건에서 공단이 시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에 반한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없다는 것이죠. (민법 제162조 참조)

결국 23년 만에 퇴직급여를 청구한 번역군무원의 노력은 안타깝게도 법원에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 사례는 소멸시효 제도의 중요성과 함께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률 격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 이 글은 법적 자문이나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최신 법률 정보는 반드시 재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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