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와 설계사 간에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중 하나가 바로 설계비, 특히 잔금 지급 시기에 대한 문제입니다. "공사 착공 시 잔금을 지급한다"는 계약은 흔하지만, 실제로는 공사 착공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죠. 그렇다면 잔금은 언제 지급해야 할까요? 오늘은 이와 관련된 법원의 판단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례 소개
한 건축주는 건축설계사와 계약을 맺으면서 "공사 착공 시 잔금을 지급하되, 건축 허가일로부터 6개월이 지나도 착공하지 않으면 허가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잔금을 지급한다"라고 약정했습니다. 그런데 건축 허가를 받았음에도 6개월이 넘도록 공사가 착공되지 않았습니다. 건축주는 "건축 허가를 받고 6개월이 지났으니 잔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설계사의 주장에 대해, "공사 착공이 지연된 것은 설계사의 책임도 있으니 잔금을 줄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건축주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계약서에 "공사 착공 시 잔금 지급"이라는 문구가 있지만, 계약 당시의 상황과 계약의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쌍방이 공사 착공 여부를 잔금 지급의 절대적인 조건으로 생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공사가 착공되지 않더라도 최대 6개월 후에는 잔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불확정기한을 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즉, 건축 허가일로부터 6개월이 지난 시점이 잔금 지급의 기한이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공사 착공 시"라는 표현은 잔금 지급 시점의 기준일 뿐, 공사 착공 자체가 잔금 지급의 조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건축 허가 후 6개월이라는 기간은 공사 착공을 위한 유예기간으로 해석됩니다.
관련 법 조항 및 판례
이 판단의 근거가 된 법 조항은 민법 제152조(기한의 정함이 없는 채권의 변제기) 입니다. 이 조항은 기한의 정함이 없는 채권은 채무자가 이행청구를 받은 때로부터 지체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잔금 지급 시기가 불확정기한이라면 채권자(설계사)가 청구하는 즉시 잔금 지급 의무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례와 유사한 판례로는 대법원 1989. 6. 27. 선고 88다카10579 판결이 있습니다.
결론
건축설계 계약에서 잔금 지급 시기에 대한 약정은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특히 "공사 착공 시"와 같은 표현을 사용할 경우, 공사 착공 여부가 잔금 지급의 절대적인 조건인지, 아니면 단순한 기준일인지 명확하게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약서 작성 시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민사판례
건물 공사에서 준공검사 완료와 동시에 잔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면, 준공검사를 받지 못한 경우 도급인(건물주)은 잔금 전체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민사판례
건축공사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책임을 판단할 때, 단순히 모호한 증거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관련된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민사판례
건축주가 공사대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건설사는 공사 완료를 거부할 수 있다. 또한, 건설사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공사가 지연된 경우, 그 기간만큼 지체상금을 낼 필요가 없다.
민사판례
아파트 분양 계약에서 잔금을 분양자가 책임지고 알선해주는 대출금으로 내기로 약정한 경우, 분양자의 책임으로 대출이 늦어지면 수분양자는 잔금 지연이자를 낼 필요가 없다.
민사판례
공사가 늦어진 것에 대한 지체상금을 건축주가 포기했는지, 그리고 잔금을 은행융자로 지급하기로 한 약정에서 건축주가 협력하지 않아 융자가 안 됐을 때 시공사가 잔금을 청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결입니다.
생활법률
건축 허가/신고 후 공사 시작 전 착공신고를 해야 하며, 미신고 시 벌금 부과되고, 신고 시 필요서류(계약서, 설계도서, 감리계약서, 보험증서 등)를 첨부하여 허가권자에 제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