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일자: 1996.02.23

형사판례

공범으로 기소되었는데, 방조만 인정될 경우?

중국에서 잣을 구입해 한국으로 밀수하려던 피고인 A씨. A씨는 한국인 B, C와 함께 밀수를 공모했습니다. A씨는 중국에서 잣을 구매하고, B와 C는 한국으로 들여오는 역할을 맡았죠. 하지만 밀수 시도 중 일부는 중국 세관에 적발되었고, 실제로 한국에 잣을 들여온 경우에도 A씨와 B, C의 공모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습니다. 결국 1심과 2심 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찰은 A씨가 밀수의 공동정범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방조범은 된다고 주장하며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A씨가 잣을 제공한 행위가 밀수를 방조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죠.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핵심은 공소장 변경 없이 범죄사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A씨는 처음부터 밀수의 공동정범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갑자기 방조범으로 죄를 묻는 것은 A씨의 방어권 행사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이죠. A씨는 공동정범이라는 혐의에 대해서만 방어를 준비했을 텐데, 갑자기 방조범이라는 전혀 다른 혐의에 대해 대응해야 한다면 제대로 방어권을 행사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게다가 법원은 방조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A씨를 방조범으로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 정의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판결은 형사소송법의 중요한 원칙을 보여줍니다. 검찰은 피고인을 기소할 때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적시해야 하고(형사소송법 제254조), 법원은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만 심판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298조). 만약 공소사실을 변경하려면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입니다.

이 판례는 밀수와 관련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6조에도 해당되지만, 핵심은 형사소송법상의 원칙에 있습니다. 대법원은 과거에도 유사한 판례(대법원 1991. 5. 28. 선고 91도676 판결, 대법원 1995. 9. 29. 선고 95도456 판결)를 통해 일관된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 이 글은 법적 자문이나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최신 법률 정보는 반드시 재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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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순차적 공모 공범 성립#향정신성의약품 제조 목적 판단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