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일자: 1992.05.26

일반행정판례

낡은 집 허물고 새 집 짓기, 그런데 건축 허가가 안 된다고요? 신뢰보호원칙 이야기

오래된 주택을 허물고 새 집을 지으려던 원고에게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구청에서 건축 허가를 거부한 것입니다. 이유는 도로와 대지의 접촉 면적이 법정 기준에 미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원고는 10년 넘게 해당 주택과 대지를 소유했고, 과거에 이미 건축 허가가 난 적도 있는데 왜 안 된다는 걸까요? 원고는 '신뢰보호원칙'을 주장하며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과연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요?

사건의 개요

원고는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자신의 대지에 새 주택을 건축하려 했습니다. 기존의 노후된 주택을 철거하고 새로 짓기 위해 구청에 건축 허가를 신청했지만, 구청은 대지가 도로에 1.8m밖에 접하지 않아 건축법(1991.5.31. 법률 제438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7조 제1항 본문(건축물의 대지는 2m 이상을 도로에 접하여야 한다)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허가를 거부했습니다. 이 대지는 1967년 토지구획정리사업 대상이었고, 1969년에는 구청의 허가를 받아 주택이 건축되었습니다. 원고는 1980년에 이 대지와 주택을 매입하여 10년 넘게 소유해 왔습니다.

원고의 주장: 신뢰보호원칙

원고는 과거에 이미 건축 허가가 나왔고, 오랜 기간 아무 문제 없이 주택을 소유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새로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기존 주택을 철거했는데, 이제 와서 허가를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죠. 즉, '신뢰보호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입니다.

법원의 판단

원심은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구청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뒤집고 구청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대법원은 신뢰보호원칙이 적용되기 위한 네 가지 요건을 제시했습니다.

  1. 행정청의 공적인 견해표명: 행정청이 개인에게 특정한 견해를 표명해야 합니다.
  2. 개인의 귀책사유 없음: 개인이 행정청의 견해를 정당하다고 믿은 것에 잘못이 없어야 합니다.
  3. 견해표명에 따른 개인의 행위: 개인이 행정청의 견해를 믿고 어떤 행위를 했어야 합니다.
  4. 개인의 이익 침해: 행정청이 이전 견해와 반대되는 처분을 하여 개인의 이익을 침해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위 요건들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과거의 건축 허가는 원고가 소유하기 전,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환지되기 전의 토지를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원고에 대한 공적인 견해표명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당시 허가는 도로 접촉 면적 기준을 충족했기 때문에 적법했지만, 환지 후에는 기준에 미달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상황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새로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믿은 원고에게도 귀책사유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단순히 10년 이상 주택을 소유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신뢰보호원칙 적용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 1985.4.23. 선고 84누593 판결; 1987.5.26. 선고 86누92 판결; 1988.9.13. 선고 86누101 판결 참조)

결론

이 사건은 신뢰보호원칙이 적용되기 위한 요건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단순히 오랜 기간 문제없이 지내왔다는 사실만으로는 신뢰보호원칙을 적용받을 수 없습니다. 행정청의 명확한 견해표명이 있어야 하고, 개인에게 귀책사유가 없어야 하며, 견해표명을 신뢰하여 행위했고 그 결과 이익 침해가 발생해야 합니다. 집을 짓기 전 관련 법규와 행정청의 규정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입니다.

※ 이 글은 법적 자문이나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최신 법률 정보는 반드시 재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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