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그 도움이 법의 테두리를 넘어선다면 오히려 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친구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친구를 숨겨주거나 도피를 돕는 행위는 범인도피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친구가 나의 공범이라면 어떨까요? 내가 한 진술이 공범을 도피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나 역시 범인도피죄로 처벌받을 수 있을까요? 최근 대법원 판결을 통해 공범 도피와 방어권 행사의 경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건의 개요
이 사건은 콜라텍 영업권을 둘러싼 분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피고인 2는 콜라텍을 양도한 후 인근에 다른 콜라텍을 개업했고, 이에 양수인이 소송을 제기하자 피고인 1에게 명의를 이전하여 강제집행을 피하려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고인 2와 피고인 3은 강제집행면탈 혐의로 고소당했고, 피고인 1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실제 콜라텍을 매수하여 운영하고 있다는 허위 진술을 했습니다. 검찰은 피고인 1이 피고인 2와 3을 도피하게 하였다며 범인도피죄로, 그리고 피고인 2와 3은 이를 교사하였다며 범인도피교사죄로 기소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피고인 1의 행위가 범인도피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범인도피죄의 의미: 형법 제151조의 범인도피죄는 '도피하게 하는 행위', 즉 은닉 이외의 방법으로 범인에 대한 수사, 재판, 형의 집행 등을 곤란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대법원 2008. 12. 24. 선고 2007도11137 판결 등 참조)
공범 도피와 자기도피: 범인도피죄는 타인을 도피하게 하는 경우에 성립하며, 타인에는 공범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범인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는 처벌되지 않습니다.
방어권 행사와 범인도피: 공범이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에 관한 사실관계에 대해 허위 진술을 하는 것은, 다른 공범을 도피하게 하는 결과가 되더라도 방어권 행사의 범위 내에 있다면 범인도피죄로 처벌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교사한 경우에도 범인도피교사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 1은 강제집행면탈죄의 공동정범으로,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에 관한 허위 진술을 한 것에 불과하므로 방어권 행사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피고인 1의 행위는 범인도피죄가 아니며, 피고인 2와 3의 교사 행위 역시 범인도피교사죄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핵심 정리
이 판결은 공범이 수사 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범행에 대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 내에 있다면 범인도피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했습니다. 물론 방어권의 남용 여부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판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혐의에 대한 진술을 하는 행위 자체가 범인도피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련 법조항: 형법 제30조, 제31조 제1항, 제151조)
형사판례
범인이 단순히 도피를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만으로는 범인도피교사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허위 자백을 시키는 등 방어권을 남용하여 타인이 범인도피죄를 짓도록 하는 경우에는 범인도피교사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형사판례
단순히 수사기관에서 범인에 대해 허위 진술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범인도피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사기관을 적극적으로 속여서 범인의 발견이나 체포를 어렵게 만들 정도가 되어야 범인도피죄로 처벌받습니다.
형사판례
범인도피죄는 범인의 도주를 돕거나 도주를 직접적으로 용이하게 하는 행위에 한정되며, 간접적인 도움이나 사회적으로 상당한 행위는 범인도피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형사판례
죄를 범한 혐의를 받는 사람은 진범 여부와 관계없이 범인도피죄의 대상이 되며, 혐의를 받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타인에게 범인도피를 시키면 범인도피교사죄가 성립한다.
형사판례
수사기관에서 참고인이 범인에 대해 허위 진술을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을 속여 범인의 발견이나 체포를 어렵게 만들 정도가 아니라면 범인도피죄로 처벌할 수 없다.
형사판례
교통사고를 낸 진범 대신 다른 사람이 자수하여 진범의 처벌을 막았다면, 진범이 종합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범인도피죄가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