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짓고 도망치는 범인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도움을 요청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은 범인이 도피를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가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방어권 남용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범인도피죄 vs 범인도피교사죄
먼저, 범인도피죄(형법 제151조)는 범인을 숨겨주거나 도피하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범인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거나 차로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반면, 범인도피교사죄는 범인이 다른 사람을 시켜서 범인도피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나 좀 숨겨줘"라고 부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상대방이 실제로 범인도피죄를 저질러야 성립합니다.
쟁점: 범인의 도피 요청, 그 자체는 처벌 대상인가?
본론으로 돌아와서, 범인이 스스로 도피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범인이 다른 사람에게 도피를 요청하는 것도 처벌할 수 없을까요?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범인의 도피 요청 자체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도움을 요청받은 사람이 실제로 범인도피를 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외: 방어권 남용에 해당하는 경우
하지만 모든 경우에 범인의 도피 요청이 처벌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범인의 요청이 방어권 남용에 해당한다면,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범인이 타인에게 허위 자백을 하도록 시키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방어권 남용 판단 기준
그렇다면 방어권 남용은 어떻게 판단할까요?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00. 3. 24. 선고 2000도20 판결).
예를 들어, 단순히 지인에게 차를 태워달라고 부탁한 것과, 협박을 통해 허위 자백을 강요한 것은 그 위험성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방어권 남용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례 분석 (대법원 2013. 9. 12. 선고 2013노162, 367, 670 판결)
실제로 한 사례에서, 도피 중인 피고인이 지인에게 차로 이동시켜 달라거나 대포폰을 구해달라고 부탁한 행위에 대해, 원심은 범인도피교사죄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 피고인과 지인이 평소 가까운 사이였고, 단순히 도피를 위해 차량 이동과 대포폰을 요청한 행위는 통상적인 도피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으며,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결론
범인의 도피 요청은 단순히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는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되지 않습니다. 다만, 허위자백 강요처럼 방어권을 남용하는 경우에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방어권 남용 여부는 위에서 언급한 여러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참고 조문: 형법 제31조(방어권), 제151조(범인도피)
형사판례
범인도피죄는 범인의 도주를 돕거나 도주를 직접적으로 용이하게 하는 행위에 한정되며, 간접적인 도움이나 사회적으로 상당한 행위는 범인도피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형사판례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허위 자백을 하도록 시키는 것은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한다.
형사판례
공범이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에 대해 허위 진술을 하는 것은 방어권 행사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설령 그 허위 진술이 다른 공범의 도피를 돕는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범인도피죄로 처벌할 수 없다.
형사판례
수사기관에서 참고인이 범인에 대해 허위 진술을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을 속여 범인의 발견이나 체포를 어렵게 만들 정도가 아니라면 범인도피죄로 처벌할 수 없다.
형사판례
누군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그 만남을 통해 범죄자가 도망가기 쉽게 만들었다면 범인도피죄가 성립한다.
형사판례
단순히 수사기관에서 범인에 대해 허위 진술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범인도피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사기관을 적극적으로 속여서 범인의 발견이나 체포를 어렵게 만들 정도가 되어야 범인도피죄로 처벌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