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려주고 담보로 채권을 양도받았는데, 채무자가 몰래 다른 사람에게 저당을 잡혀버렸다면 얼마나 황당할까요? 이런 경우, 채무자를 배임죄로 고소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이와 관련된 법원의 판단을 살펴보겠습니다.
사건의 개요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돈을 빌리면서, 담보로 자신의 전세보증금반환채권 일부를 양도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채권 양도 사실을 알리기 전에, 제3자에게 해당 전세보증금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었습니다. 이에 피해자는 피고인을 배임죄로 고소했습니다.
쟁점: 채권양도담보 설정 후 제3자에게 근저당 설정은 배임죄인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채무자가 채권양도담보계약을 체결한 후, 채권자에게 알리기 전에 제3자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해 준 행위가 배임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여야 하는데,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해 이러한 지위에 있는지가 문제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배임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배임죄의 주체: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자신의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때 성립합니다. 여기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란 단순한 계약관계를 넘어, 상호 신임관계를 바탕으로 타인의 재산을 보호하거나 관리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형법 제355조 제2항).
채권양도담보계약의 본질: 채권양도담보계약에서 채무자는 담보가치를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담보 목적을 위한 것일 뿐,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는 여전히 금전채권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이익대립관계입니다.
대법원 판례: 대법원은 기존 판례(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20. 6. 18. 선고 2019도1434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9도1477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1. 4. 28. 선고 2011도3247 판결)를 통해 금전채무 관계에서 채무자는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판시해 왔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채무자가 담보 목적 채권의 가치를 유지해야 할 의무를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관한 것이지 채권자의 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결론
채권양도담보계약에서 채무자가 담보가치를 유지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더라도, 이는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단순한 채권·채무 관계에서는 채무자가 채권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발생시킬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참고 법조항 및 판례
형사판례
빚 담보로 빌려준 사람(채권자)이 돈을 빌린 사람(채무자)에게 나중에 다시 사올 수 있는 권리(환매권)를 주고 부동산 소유권을 넘겨받은 뒤, 제3자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해 줬다면 배임죄가 성립하는가? 이 사건에서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정산이 끝나 소유권이 채권자에게 완전히 넘어갔고, 채무자는 단지 채권자의 호의로 환매권만 가진 것이라고 본 원심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었다.
형사판례
돈을 빌리면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자기 소유 부동산에 저당권을 설정해주기로 약속했는데, 약속과 달리 다른 사람에게 먼저 저당권을 설정해준 경우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결입니다. 대법원은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형사판례
돈을 빌리면서 다른 채권을 담보로 제공한 채무자가 그 담보를 다른 사람에게 또 양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 단순히 계약상 의무를 위반한 것일 뿐, 타인의 재산 관리를 위탁받은 것은 아니라는 판단.
형사판례
돈을 빌려주고 채무자가 소유한 동산을 담보로 받았는데, 채무자가 담보를 처분해 버렸더라도 배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돈을 빌려준 채권자와 돈을 빌린 채무자의 관계는 단순한 계약 관계이지, 채무자가 채권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신임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형사판례
돈을 빌려주고 땅에 가등기를 설정해주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다른 사람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해준 경우, 단순한 채권채무 관계에서는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형사판례
돈을 빌리면서 주식을 담보로 제공한 사람이 그 주식을 처분하더라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