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일자: 2018.10.30

민사판례

'종북', '주사파'라는 꼬리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정치적 논쟁이 뜨거워질수록 상대방을 향한 비판의 수위도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종북', '주사파'와 같은 단어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기도 합니다. 이런 표현들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요? 단순한 정치적 비판일까요, 아니면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해당하는 불법행위일까요? 최근 대법원은 이러한 쟁점을 다룬 흥미로운 판결을 내놓았습니다.

사건의 개요

한 국회의원과 그 배우자가 여러 언론과 개인의 트위터에서 '종북', '주사파', 특정 정치세력에 속해 있다는 표현으로 비판받았습니다. 이에 원고들은 해당 표현들이 명예훼손과 모욕에 해당한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다수의견)

대법원 다수의견은 '종북', '주사파'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고 해서 무조건 명예훼손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표현이 사실을 적시한 것인지, 단순한 의견 표명인지, 그리고 그 표현으로 인해 실제로 사회적 평판이 훼손되었는지 여부라는 것입니다. 특히 공적인 존재, 즉 공인에 대한 표현의 경우에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공인은 비판을 감수해야 하고, 그 비판에 대해서는 해명과 재반박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의혹 제기는 광범위하게 허용되어야 하며, 공개토론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다수의견은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이 사건의 표현행위는 의견 표명이나 의혹 제기에 불과하며 설령 사실 적시가 포함되어 있더라도 공인인 원고들에 대한 의혹 제기는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구체적 정황 제시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반대의견)

반면 반대의견은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종북', '주사파'와 같은 극단적인 표현은 상대방을 토론의 대상에서 배제하고 민주적 토론을 봉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사건의 표현행위가 선거를 앞두고 이루어졌다는 점, 원고들이 소수자의 위치에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위법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핵심 쟁점과 관련 법리

  •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의 경계: 헌법 제21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민법 제750조, 제751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또는 모욕)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 공인 이론: 공인은 일반인보다 더 넓은 범위의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다수의견은 이 이론을 적용하여 원고들이 공인으로서 감내해야 할 비판의 범위를 넓게 보았습니다.
  • 사실 적시와 의견 표명의 구분: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사실을 적시해야 합니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 표현행위를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 표명으로 보았지만, 반대의견은 사실 적시가 포함되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그것이 진실이거나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위법성이 조각됩니다. 다수의견은 피고들에게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이 판결의 의미

이 판결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의 경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종북', '주사파'와 같은 표현의 위법성을 판단할 때에는 단순히 단어 자체의 의미뿐 아니라, 표현의 맥락, 공인 여부, 진실성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참조조문: 헌법 제21조 제1항, 제4항, 민법 제750조, 제751조, 형법 제307조, 제309조, 제310조

참조판례: 대법원 2002. 1. 22. 선고 2000다37524, 37531 판결, 대법원 2002. 12. 24. 선고 2000다14613 판결

※ 이 글은 법적 자문이나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최신 법률 정보는 반드시 재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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