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A씨,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다
1973년, 박정희 정권 시절. 육군 인사참모였던 A씨는 갑작스럽게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과 폭행을 당했습니다. 쿠데타 모의 혐의라는 누명을 쓰고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전역지원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죠. 그 후 A씨는 전역처분의 부당함을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오랜 시간 싸워왔습니다. 마침내 2017년, 법원은 A씨의 전역처분이 무효임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고문과 폭행, 부당한 전역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A씨는 가족들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국가는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배상을 거부했습니다. 과연 국가의 주장은 옳은 것일까요?
불법행위 손해배상, 소멸시효는 언제부터?
일반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이내에 해야 합니다(민법 제766조 제1항). 그런데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란 단순히 손해가 발생했음을 추측하거나 의심한 날이 아니라, 손해 발생 사실, 가해 행위의 불법성, 가해 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모두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인식한 날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그 행위가 불법행위이고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야 합니다 (대법원 1989. 9. 26. 선고 89다카6584 판결 등).
대법원, A씨의 손을 들어주다
대법원은 A씨의 전역처분무효확인소송 승소가 확정된 시점이 비로소 A씨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A씨는 전역처분이라는 형식적인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전역처분 자체가 위법하고 그 과정에서 고문과 폭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즉, A씨는 전역처분이 무효임을 법원을 통해 확인받고 나서야 비로소 국가배상청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죠. 따라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전역처분무효확인소송 승소 확정 시점부터 시작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대법원 2011. 3. 10. 선고 2010다13282 판결, 대법원 2013. 7. 12. 선고 2006다17539 판결 등 참조).
과거사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를 위한 중요한 판결
이번 판결은 과거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를 입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A씨처럼 불법행위 당시에는 손해배상청구가 어려웠던 피해자들이 소멸시효 때문에 권리를 구제받지 못하는 상황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 법률:
민사판례
과거사 관련 국가배상 소송에서,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이후에는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시효를 계산하는 '객관적 기산점' 기준이 적용되지 않고, 피해자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시효가 시작되는 '주관적 기산점' 기준만 적용된다는 대법원 판결.
민사판례
과거 고문 등 위법수사로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경우, 재심 확정 전까지는 손해배상 청구가 어려웠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며,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
민사판례
한국전쟁 당시 불법적으로 살해된 민간인 유족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소멸시효는 진실규명결정을 **실제로 알게 된 날**부터 시작된다는 판결. 단순히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며, 피해자가 그 내용을 실제로 인지해야 소멸시효가 진행된다는 의미입니다.
민사판례
과거 국가기관의 불법행위(고문, 불법구금 등)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시, 소멸시효는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이 아니라 관련 형사재판의 무죄 확정 시점부터 시작된다.
민사판례
수사 과정에서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한 사람이 유죄 확정판결 후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경우, 재심 무죄 확정 전까지는 국가배상 청구를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
민사판례
경찰에게 폭행당한 후 오히려 무고죄로 기소되었다가 무죄를 받은 사람은, 무죄 확정 판결 이후부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소멸시효도 그때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