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일자: 2003.05.16

민사판례

돈 받기 전에 먼저 일해야 하는데, 상대방이 돈 못 줄 것 같으면 어떡하죠?

사업하다 보면 계약대로 먼저 일을 하고 나중에 돈을 받기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돈을 줘야 할 상대방이 약속된 날에 돈을 못 줄 것 같으면 먼저 일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안하겠죠? 이런 상황에서 법은 먼저 일할 의무가 있는 사람을 어떻게 보호할까요?

오늘은 먼저 일을 해야 하는 의무, 즉 "선이행의무"를 부담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대가 지급이 어려워 보일 때 먼저 자신의 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례를 소개합니다. (민법 제536조 제2항, 신의칙 관련)

사건의 개요:

동주공영이라는 회사가 한국토지공사로부터 땅을 매입하고 그 위에 오피스텔을 짓기로 했습니다. 동주공영은 시공사인 삼호, 그리고 신탁회사인 한국토지신탁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기로 약속했죠. 삼호는 동주공영에게 토지대금을 빌려주고, 지급도 보증해주는 대신 한국토지신탁으로부터 공사대금을 받기로 했습니다. 즉, 삼호는 먼저 돈을 빌려주고 보증을 서는 선이행의무를 부담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가 터졌습니다. 한국토지신탁은 자자금 확보가 어려워져 삼호에게 줄 공사대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에 삼호는 "돈을 줄 것 같지도 않은데 왜 내가 먼저 돈을 빌려주고 보증을 서야 하냐?"며 토지대금 대여 및 지급보증 의무 이행을 거절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삼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쌍방이 서로 주고받기로 약속한 계약, 즉 "쌍무계약"에서는 한쪽이 먼저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더라도, 상대방이 돈을 지급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인다면 먼저 이행할 의무가 있는 쪽은 상대방이 돈을 줄 확실한 보장을 해줄 때까지 자신의 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한국토지신탁이 IMF 사태로 인해 공사대금 지급이 어려워진 것이 명백했고, 삼호에게 지급할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확실한 대책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삼호는 한국토지신탁이 돈을 지급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의무 이행을 거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핵심 정리:

  • 돈을 주고받는 계약에서 한쪽이 먼저 일을 하거나 돈을 줘야 할 의무가 있더라도, 상대방이 제대로 돈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먼저 이행할 의무를 지닌 쪽은 자신의 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536조 제2항, 신의칙)
  • 이는 상대방의 채무 이행이 "현저히 불투명"해야 하며, 단순한 의심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 관련 판례: 대법원 1997. 7. 25. 선고 97다5541 판결, 대법원 1999. 7. 9. 선고 98다13754, 13761 판결

이 판례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먼저 이행해야 하는 계약에서 상대방의 경제적 상황이 악화되어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면, 법적으로 자신의 의무 이행을 거절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계약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고, 상대방의 재정 상태를 파악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이 글은 법적 자문이나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최신 법률 정보는 반드시 재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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