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백지 위임장을 받아 공증까지 받았다면 채무자는 꼼짝없이 돈을 갚아야 할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늘은 채권자가 채무자의 백지 위임장을 함부로 채워 넣어 발생한 분쟁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건의 개요
원고는 피고에게 여러 차례 돈을 빌렸고, 이자 등을 연체하자 원금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갚겠다는 지불각서를 썼습니다. 그런데 지불각서에는 이자율과 변제일이 비어있었습니다. 피고는 공증을 받자며 원고에게 위임장을 요구했고, 원고는 채무자, 연대보증인, 차용금액만 적힌 백지 위임장을 피고에게 건넸습니다. 그런데 피고는 위임장에 비어있던 이자율(연 40%), 변제일 등을 마음대로 채워 넣고 공정증서까지 만들어 버렸습니다.
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채권자인 피고가 백지 위임장을 함부로 채워 넣은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백지 위임장을 받았다고 해서 마음대로 내용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채무자의 대리인으로서 공정증서를 작성하는 경우, 채무자가 위임장을 줬다는 사실만으로 채권자가 모든 내용을 마음대로 정할 권한까지 위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법원은 백지로 남겨진 부분이 정당한 권한에 따라 채워졌는지는 채권자가 입증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즉, 피고는 원고가 정말로 연 40%의 이자와 특정 변제일에 동의했고, 그런 내용으로 위임장을 채워 넣을 권한까지 줬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단순히 위임장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핵심 정리
관련 법조항: 민사소송법 제202조(증명책임), 제288조(자백), 제357조(증거능력), 제358조(자유심증주의)
상담사례
백지위임장에 도장을 찍어주면 타인이 악용하여 대출 등의 법적 문제에 휘말릴 수 있으므로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상담사례
차용증에 이자와 날짜를 명시하지 않고 빈칸으로 두면 채권자가 임의로 내용을 채워넣을 수 있다는 착각으로 손해를 볼 수 있으므로, 차용증 작성 시 모든 항목을 명확히 기재하고 빈칸이 있는 서류에 서명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민사판례
돈을 빌려주고 받은 차용증서에 돈 빌린 사람이 자필로 서명했지만 도장은 찍지 않았고, 돈 빌린 사람은 나중에 "나는 백지에 서명만 했고, 나중에 다른 내용이 채워졌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단순히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럴만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민사판례
돈을 빌리고 차용증 대신 백지어음에 서명만 해준 경우, 빌린 사람이 마음대로 금액을 채워 넣을 권한을 줬다는 것을 증명할 책임은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어음에 서명한 사람에게 있다.
형사판례
빌린 돈의 이자가 법정 최고 이자보다 높더라도, 빌린 돈과 이자를 합한 금액이 백지수표 보충 한도 내라면 부정수표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민사판례
법원은 약속어음의 필수 기재사항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원고에게 이 부분을 명확히 설명하고 보충할 기회를 주지 않아 석명의무를 위반했다는 대법원 판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