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일자: 1994.05.09

민사판례

똑같이 생긴 약, 다른 회사에서 만들었어도 괜찮을까?

오늘은 비슷하게 생긴 약 때문에 벌어진 법정 공방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자낙스(XANAX)라는 항불안제를 만드는 A 제약회사와 비슷한 약을 만드는 B 제약회사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는데요. 과연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사건의 발단: 너무 닮은 두 개의 약

A 제약회사는 자낙스라는 항불안제를 오랫동안 생산해왔습니다. 타원형에 가운데 홈이 파인 이 약은 함량에 따라 흰색, 자홍색 등으로 구분되었습니다. 그런데 B 제약회사에서 비슷한 성분의 약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약 역시 자낙스와 모양과 색깔이 매우 유사했습니다. 다만 약 표면에 새겨진 글자가 A 회사 제품은 "UPJOHN", B 회사 제품은 "A"로 달랐고, 약의 용기와 포장은 확연히 구분되었습니다.

A 제약회사는 B 제약회사의 약이 자사 제품과 너무 유사하여 소비자들이 혼동할 우려가 있다며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관련 법조항: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 - 타인의 상품과 혼동하게 하는 행위)

법원의 판단: 환자의 혼동 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원은 B 제약회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전문가는 혼동하지 않는다: 의사나 약사 같은 전문가들은 약의 모양과 색깔이 비슷하더라도 약 자체의 성분이나 제조사 등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혼동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2. 처방전 없이 구매 불가: 문제가 된 두 약 모두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의사의 처방전 없이는 구매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 소비자가 약의 모양과 색깔만으로 혼동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대부분 병원에서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사에 의해 제공되기 때문에 약의 유사성이 직접적인 혼동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3. 용기와 포장의 차별성: 두 약의 용기와 포장은 확연히 달랐기 때문에, 약을 구매하는 단계에서 혼동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은 상품의 거래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동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4. 환자의 입장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A 제약회사는 환자가 약의 포장을 제거한 후 모양과 색깔만으로는 약을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환자가 스스로 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처방에 따라 수동적으로 약을 복용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환자의 혼동 가능성만으로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결론: 약의 유사성보다는 거래 단계의 혼동 가능성이 중요

이 판례는 약의 모양과 색깔이 비슷하더라도, 용기와 포장으로 구분이 가능하고 거래 단계에서 혼동의 우려가 없다면 부정경쟁행위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전문 의약품의 경우, 환자보다는 의사나 약사 등 전문가의 입장에서 혼동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 이 글은 법적 자문이나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최신 법률 정보는 반드시 재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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