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 근로자인가 아닌가?

보험설계사는 근로자일까요? 아닐까요? 겉으로 보기엔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인사업자처럼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근로자성 판단이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8다288967)을 통해 다시 한번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사례는 라이나생명보험과 위촉계약을 맺은 보험설계사들이 퇴직금을 청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보험설계사들은 회사로부터 고객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제공받아 전화로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퇴직금 지급을 요구했죠.

하지만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핵심 쟁점은 바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는가?" 였습니다. 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는 계약 형식이 아닌 실질적인 근로 제공 관계를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 즉, '위촉계약'이라는 이름을 썼더라도 실제로는 근로자처럼 일했다면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종속성을 판단할까요?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15. 7. 9. 선고 2012다20550 판결 참조).

• 업무 내용과 수행 과정에 대한 회사의 지휘・감독: 회사가 업무 내용을 정하고,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시했는지 여부
• 근무시간과 장소에 대한 구속: 회사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일하도록 했는지 여부
• 독립적인 사업 운영 가능성: 설계사가 스스로 비품이나 도구를 마련하고,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할 수 있는지 여부
• 이윤 창출과 손실 초래에 대한 위험 부담: 사업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을 설계사가 직접 지는지 여부
• 보수의 성격: 고정급이 있는지, 성과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는지 여부
•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여부: 회사가 소득세를 원천징수했는지 여부
• 근로 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전속성: 특정 회사에서 지속적이고 배타적으로 일했는지 여부
• 사회보장제도 적용 여부: 4대보험 등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았는지 여부

법원은 이러한 기준에 따라 이 사례의 보험설계사들은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회사가 고객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긴 했지만, 설계사들은 스스로 고객에게 연락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등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고정급 없이 성과에 따라 수수료를 받았으며, 사업의 위험도 스스로 부담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보험설계사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위촉계약을 맺고 일하는 사람들의 근로자성 판단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계약 형식에만 얽매이지 않고, 실질적인 관계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판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