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일자: 2002.05.24

일반행정판례

외환위기 시대, 기업의 생존 전략과 공정거래

1997년 말,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고, 소비자들은 불안에 떨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기업의 정당한 경영활동과 공정거래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오늘은 식료품 제조업체의 출고 조절 행위가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살펴보겠습니다.

사건의 개요

당시 시장지배적 사업자였던 한 식료품 제조업체(원고)는 대두유의 주원료인 대두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외환위기로 환율이 폭등하고 대두 수급이 불투명해지자 원고는 대두유 가격을 세 차례 인상했습니다.  동시에 소비자들의 사재기와 유통업자들의 매점매석으로 대두유 수요가 급증했지만, 원고는 오히려 출고량을 줄였습니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피고)는 원고의 행위가 구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1999. 2. 5. 법률 제581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조의2 제1항 제2호에서 금지하는 부당한 출고조절 행위에 해당한다며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원고의 출고 조절이 정당한 경영활동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출고 감소량이 미미하고 비교 기준이 부적절: 원고의 출고 감소량은 통상적인 수준을 현저히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고, 공정위가 제시한 비교 기준 기간도 이미 수요가 급증한 시점이어서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 고려: 당시 원고는 1달치 대두만 보유하고 있었고, 가수요에 전량 공급하면 재고가 소진되어 설 명절 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출고 조절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었습니다.
  • 가수요의 원인과 기업의 손실 고려: 가수요는 소비자와 유통업자의 사재기, 매점매석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원고가 이에 맞춰 생산을 늘리면 부산물 처리 문제와 원가 상승으로 큰 손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 가격 인상과 출고 조절의 연관성 부재: 원고는 대두 가격 상승으로 인해 가격을 인상했을 뿐, 출고 조절을 통해 가격 인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결론

법원은 위와 같은 이유로 원고의 출고 조절 행위가 구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 제3조의2 제1항 제2호의 부당한 출고조절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고 (대법원 2001. 12. 24. 선고 99두11141 판결),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례는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기업의 생존을 위한 경영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출고량 감소만으로 부당한 출고 조절 행위를 판단해서는 안 되며, 당시 시장 상황, 기업의 경영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중요한 판례입니다.

※ 이 글은 법적 자문이나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최신 법률 정보는 반드시 재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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