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나 동료가 내 이름으로 몰래 계약을 하고 도장까지 위조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죠. 특히 어음처럼 금전적인 책임이 큰 경우라면 더욱 심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 사실을 알고도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면, 그 계약을 내가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오늘은 '무권대리'와 '묵시적 추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사례: 철수(甲)가 영희(乙)의 허락 없이 영희 이름으로 어음을 발행하고, 심지어 영희의 도장까지 위조해서 민수(丙)에게 줬습니다. 영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철수를 고소하지 않았습니다. 이 경우 영희가 철수의 행동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무권대리란 무엇일까요?
'대리'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법률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권대리'는 대리할 권한이 없는데도 마치 권한이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행위하는 것을 뜻합니다. 위 사례에서 철수는 영희의 허락을 받지 않았으므로 무권대리인입니다.
묵시적 추인이란?
무권대리 행위가 있었을 때, 본인이 직접 "인정한다!"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본인의 행동이나 태도를 통해 그 행위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를 '묵시적 추인'이라고 합니다.
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요?
법원은 무권대리에 대한 묵시적 추인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대법원 1990. 4. 27. 선고 89다카2100 판결) 즉, 말로 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추인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단순히 오랫동안 고소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묵시적 추인을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무권대리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 예를 들어 위조처럼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하게 판단합니다. 단순히 고소를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추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대법원 1998.02.10. 선고 97다31113 판결)
그렇다면 영희는 어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까요?
위 사례에서 영희가 단지 철수를 고소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철수의 위조 어음 발행을 묵시적으로 추인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희가 어음에 대한 책임을 지려면, 고소를 하지 않은 것 외에도 철수의 행위를 인정하는 다른 행동이나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영희가 민수에게 어음 대금의 일부를 갚았다거나, 철수에게 어음 발행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다면 추인으로 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결론적으로, 무권대리에 대한 묵시적 추인은 인정될 수 있지만, 단순히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본인의 추인 의사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다른 증거가 필요합니다. 특히 위조처럼 범죄 행위가 관련된 경우에는 더욱 신중한 판단이 요구됩니다.
상담사례
타인이 내 이름으로 계약하는 것을 알면서 방치하면 암묵적 대리권을 준 것으로 간주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상담사례
약속어음의 숨은 추심위임배서는 채권자가 추심인에게 돈을 받아오라 위임했음에도, 마치 추심인에게 약속어음을 양도한 것처럼 보여 채권자가 추심인에게 돈을 줘야 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상담사례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제3자의 보증어음을 받았으나, 보증인이 서명 위조를 주장하는 경우, 채권자는 보증인의 서명 진위 혹은 묵시적 추인을 입증해야만 보증인에게 어음금 청구가 가능하다.
상담사례
직원의 무단 계약(무권대리)은 추인을 통해 유효하게 만들 수 있으며, 계약 상대방에게 직접 추인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상담사례
어음 추심위임은 어음 소지인(배서인)이 타인(피배서인)에게 어음상의 채권 추심 권한만 위임하는 것으로, 피배서인은 어음의 소유권은 없으며 양도는 불가능하지만 재위임은 가능하다.
민사판례
대리권 없이 타인의 이름으로 계약한 경우라도, 진짜 주인(본인)이 나중에 그 계약을 인정하는 행동을 하면(묵시적 추인), 그 계약은 유효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