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일자: 2004.06.24

형사판례

의사의 치료중단, 살인죄일까? 살인방조죄일까?

환자의 가족이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퇴원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 과연 의사에게는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오늘은 의사의 치료중단과 관련된 흥미로운 판례를 소개합니다.

사건의 개요

한 남성이 술에 취해 넘어져 머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수술 후 의식이 회복되고 있었지만, 자가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였죠. 그런데 환자의 아내는 계속되는 치료비 부담을 이유로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원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의사는 환자의 아내에게 퇴원 시 사망 가능성을 설명하고 귀가서약서를 받은 후 퇴원을 허락했습니다. 환자는 퇴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습니다. 검찰은 환자의 아내와 담당 전문의, 주치의를 공동으로 살인죄로 기소했습니다.

쟁점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의사들에게 살인죄의 고의가 있었는지, 그리고 환자 아내와 공동정범으로 볼 수 있는지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 살인죄의 고의: 법원은 의사들이 환자의 퇴원으로 사망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즉, 살인죄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한 것이죠. (형법 제13조, 제250조 제1항) 살인죄에서 고의는 살해할 목적뿐 아니라, 자신의 행위로 사망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면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대법원 2003. 4. 25. 선고 2003도949 판결 등)

  • 공동정범 성립 여부: 하지만 법원은 의사들을 환자 아내와 공동정범으로는 보지 않았습니다. 공동정범이 되려면 공동의 의사로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데 (형법 제30조), 의사들이 환자의 아내와 그런 관계였다고 보기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은 아내의 퇴원 요구를 거절하기도 했고, 퇴원 후 즉시 사망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대법원 2003. 3. 28. 선고 2002도7477 판결 등)

  • 살인방조죄 성립: 법원은 의사들이 환자 아내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행위를 돕는 행위를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의사들은 환자 아내의 살인을 방조한 것이죠. (형법 제32조) 환자를 집으로 보내고 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하도록 지시한 행위는 작위에 의한 방조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종범은 정범의 실행행위 전에 도움을 주는 경우에도 성립한다는 판례도 있습니다. (대법원 1996. 9. 6. 선고 95도2551 판결 등) 또한, 법원은 공동정범으로 기소된 경우라도 공소장 변경 없이 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98조 제2항, 대법원 1995. 9. 29. 선고 95도456 판결)

결론

결국 법원은 의사들을 살인방조죄로 판단했습니다. 의사의 치료 중단 행위가 환자의 사망에 기여했지만, 환자 아내의 적극적인 퇴원 요구와 환자의 상태 등을 고려했을 때 공동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보기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판례는 의사의 치료중단과 관련된 책임의 범위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법적 자문이나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최신 법률 정보는 반드시 재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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