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의 돈을 함부로 썼다가 횡령죄로 고소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오늘은 재단 자금을 인출하여 이사장과 이사들 명의로 예치한 행위가 횡령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건은 횡령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불법영득의사'에 대한 이해를 돕는 좋은 사례입니다.
사건의 개요
한 재단의 이사장과 감사가 묘지 분양대금 등을 가짜 경비 지출로 가장하여 인출한 후, 이사장과 이사들 명의의 계좌에 넣어 보관했습니다. 이에 검찰은 이들이 돈을 횡령했다고 주장하며 기소했습니다.
원심의 판단
원심은 이들의 행위를 횡령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사회 의결 없이 돈을 인출했고, 사장이나 경리 직원 몰래 관리했으며, 돈의 사용처도 명확히 밝히지 못했기 때문에 재단의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려는 의도, 즉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다고 본 것입니다.
대법원의 판단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횡령죄의 핵심은 '불법영득의사'인데, 이는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꾀할 목적으로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보관하는 타인의 재물을 자기의 소유인 것 같이 사실상 또는 법률상 처분하는 의사"(형법 제356조)를 말합니다. 즉, 단순히 재단의 돈을 마음대로 사용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내 돈처럼 쓰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그러한 의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돈을 인출한 후 이사장과 이사들 명의로 금융기관에 예치했고, 인출한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증거도 없었으며, 오히려 재단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번 밝혔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또한, 횡령 여부를 판단할 때는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생기게 하는 엄격한 증거"(형사소송법 제307조, 제308조)가 필요한데, 원심은 이러한 증명 없이 유죄를 선고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결론
이 판결은 횡령죄 성립에 있어서 '불법영득의사'의 입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돈의 사용처가 불분명하거나 회계 처리가 투명하지 않더라도, '내 돈처럼 쓰겠다'는 의도가 입증되지 않으면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재단 운영의 투명성 확보와 함께 횡령죄에 대한 정확한 법리 적용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사례입니다.
참고 법조항 및 판례
형사판례
회사 대표나 청산인 등이 회사 돈을 정해진 절차 없이 사용했더라도, 개인적인 이득을 취할 목적이 없었다면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입니다. 단순히 절차상 문제만으로는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형사판례
회사 대표와 관리이사가 회사 비자금을 사용한 사안에서, 단순히 비자금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업무상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고, 불법영득의사(자기 이익을 위해 회사 돈을 마음대로 쓰려는 의도)를 입증해야 한다는 판결. 법원은 비자금 사용 목적이 회사 운영에 필요한 지출이었다면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
형사판례
종중 이사들이 정식 이사회를 열지 않고 종중 돈을 빌려 갔더라도, 참석 가능한 이사 전원이 동의했고 불법적으로 영득할 의사가 없었다면 횡령죄로 볼 수 없다.
형사판례
회사 대표와 경리가 회계 조작을 통해 회사 자금을 빼돌려 차명계좌에 넣어 관리한 행위가 횡령죄 및 범죄수익은닉죄에 해당하는지 여부. 횡령죄가 성립하기 전에는 범죄수익은닉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
형사판례
학교법인 이사장이 학생들로부터 받은 교비를 개인 계좌로 옮겨 관리하다가 횡령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횡령죄 성립에 필요한 "불법영득의사"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습니다. 즉, 교비를 개인 계좌로 옮긴 것만으로는 횡령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실제로 횡령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엄격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사판례
회사 대표이사가 회사 돈을 쓰고도 어디에 썼는지 증빙하지 못하면, 횡령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