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어려워져 회생 절차를 밟을 때, 빚을 어떻게 갚아나갈지 정하는 계획을 회생계획이라고 합니다. 이 계획은 아무렇게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법원의 인가를 받아야 효력이 발생하는데요, 법원은 회생계획이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오늘은 이 '공정'과 '형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채권자들끼리 빚 갚는 순서를 미리 정해놓았더라도 법원이 꼭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회생계획의 '공정'과 '형평'이란?
회생계획의 인가 요건 중 하나인 '공정'과 '형평'은 빚을 갚는 순서와 관련이 있습니다.
다른 종류의 채권자 사이: 예를 들어 근로자의 임금채권, 은행의 대출금 채권처럼 종류가 다른 빚은 법으로 정해진 순서(구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217조 제1항)에 따라 갚아야 합니다. 이때 회생계획은 법이 정한 순서를 고려해서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 차등을 두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법에서 먼저 갚으라고 정한 빚은 회생계획에서도 우선적으로 갚는 것으로 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종류의 채권자 사이: 만약 모두 은행에서 빌린 돈이라면, 같은 종류의 빚이므로 모든 채권자에게 똑같은 비율로 갚도록 계획해야 합니다(구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218조 제1항).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채권자들끼리 빚 갚는 순서를 정했다면?
같은 종류의 빚을 가진 채권자들이 "우리끼리는 누구부터 돈을 받겠다"라고 미리 약속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에서는 이러한 합의를 존중해서, 다른 채권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회생계획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구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93조 제3항 전문).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제1회 관계인집회 기일 전날까지 법원에 증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구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93조 제3항 후문). 만약 기한 내에 증명하지 못하면, 법원은 그 합의를 고려하지 않고 회생계획을 인가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16. 2. 26. 선고 2015다244896 판결에서는 채권자들끼리 변제 순위에 대한 합의가 있었지만, 법원에 증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원이 이를 고려하지 않고 회생계획을 인가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 판결은 채권자 간 합의가 있더라도 법에서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법원이 이를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핵심 정리
민사판례
부실기업 정리 시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들의 권리 변동을 정하는 정리계획은 공정하고 형평해야 하며, 채권 종류에 따라 합리적인 차등을 둘 수 있지만, 부당한 차별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판례입니다. 특히 보증채권은 주채권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처리될 수 있지만, 주주보다 불리하게 또는 다른 유사 채권보다 과도하게 불리하게 설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민사판례
부도난 회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채권자들에게 빚을 어떻게 갚을지 정하는 정리계획은 모든 채권자에게 공정하고 형평성 있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 판례에서는 한국산업은행에게 다른 채권자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빚을 갚도록 한 정리계획은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민사판례
회사정리절차에서 정리계획에 채권자 일부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법원은 특정 조건 하에 계획을 인가할 수 있습니다. 이때 채권자 보호를 위한 조항을 마련해야 하며, 회사 재산은 '청산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또한, 정리계획은 채권자와 주주 사이에 공정하고 형평하게 권리를 조정해야 하며, 같은 종류의 권리자들 사이에서는 실질적인 평등을 유지해야 합니다. 특히 보증채권의 경우, 다른 정리채권보다 불리하게 취급할 수 있습니다.
민사판례
회사 경영 악화로 기존 회사정리 계획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채권자들이 변경계획에 불복하여 특별항고했으나, 대법원은 변경계획이 법률과 공정·형평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기각했습니다.
민사판례
돈을 받아야 할 채권자가 회생절차에 들어간 채무자에게 담보가 있는 돈(회생담보권)을 신고할 때, 같은 돈을 담보 없는 돈(회생채권)으로 중복 신고해서는 안된다는 판결.
민사판례
회사가 회생절차를 밟으면서 회생계획에 따라 특수관계인의 채권을 면제하기로 했는데, 회생절차 개시 전에 해임된 이사의 퇴직금 채권도 면제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입니다. 대법원은 회생계획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단순히 해임된 이사가 회생절차 개시 당시 임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면제 대상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