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맡긴 땅을 함부로 팔아버리는 횡령 사건, 안타깝게도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횡령한 돈으로 다른 땅을 사서 또 문제가 생긴다면 이것도 횡령일까요? 오늘은 횡령 후 횡령금으로 다른 재산을 취득했을 때, 이를 또 다른 횡령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판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건의 개요
피고인은 종중으로부터 명의신탁을 받아 토지(초곡리 토지)를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은 이 토지를 마음대로 팔아버렸고, 그 돈으로 다른 토지(용전리 토지)를 샀습니다. 나중에 이 용전리 토지를 제3자에게 담보로 제공했는데, 검찰은 이 담보 제공 행위 역시 횡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피고인이 초곡리 토지를 판 행위는 횡령이 맞지만, 그 돈으로 산 용전리 토지를 담보로 제공한 행위는 별개의 횡령죄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횡령죄는 '상태범'입니다. 쉽게 말해 횡령하려는 의도로 타인의 재물을 자기 것처럼 처분하는 순간 범죄가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횡령 이후에 횡령물을 어떻게 처분했는지는, 횡령죄 자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불가벌적 사후행위'라고 합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초곡리 토지를 팔아넘기는 순간 이미 횡령죄가 성립했습니다. 그 이후에 횡령금으로 다른 땅을 사고, 그 땅을 담보로 제공한 것은 횡령으로 얻은 이익을 사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즉, 초곡리 토지에 대한 횡령 이후의 행위이므로, 별도의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1978. 11. 28. 선고 78도2175 판결 참조)
관련 법조항
핵심 정리
이번 판례는 횡령 후 횡령금을 사용한 행위가 언제나 새로운 횡령죄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횡령 이후의 처분 행위가 기존 횡령행위에 포함되는 '불가벌적 사후행위'인지, 아니면 별개의 범죄를 구성하는 새로운 행위인지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건의 경우, 법원은 횡령금으로 취득한 용전리 토지의 담보 제공 행위를 불가벌적 사후행위로 판단했습니다.
형사판례
타인의 부동산을 맡아 관리하던 사람이 그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후(근저당 설정), 그 부동산을 팔아버리는 경우, 담보 설정 행위와 별개로 매매 행위도 횡령죄에 해당하는가?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그렇다"고 판단하며 기존 판례를 변경했습니다.
형사판례
진짜 소유자와 관계없이 명의만 빌린 사람이 그 부동산을 처분해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
형사판례
돈 받고 일 처리해주기로 한 사람이 그 일로 받은 돈을 마음대로 쓰면 횡령죄가 된다. 특히 땅을 사놓고 등기는 안 했지만 사실상 주인처럼 행세할 수 있는 사람이 원래 주인에게 땅 팔아달라고 부탁해서 받은 돈을 원래 주인에게 안 주고 함부로 쓰면 횡령죄다.
형사판례
다른 사람 이름으로 등기된 재산(명의신탁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했더라도, 실제 소유자가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을 가능성이 있다면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
형사판례
공동상속인 중 한 명이 상속재산인 땅을 보관하다가 다른 상속인들의 반환 요구를 거부하고 제3자에게 담보로 제공한 경우, 반환 거부 시점에 이미 횡령죄가 성립하며, 이후 담보 제공 행위는 추가적인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
형사판례
다른 사람(신탁자)을 위해 부동산을 자기 이름으로 등기한 사람(수탁자)이, 실제 소유자는 따로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원래 소유자로부터 부동산을 사들인 경우, 그 수탁자는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