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중 발생한 '거창사건'은 국가가 저지른 과거의 아픔 중 하나입니다. 이 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유족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국가는 소멸시효를 주장하며 배상 책임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과연 국가의 주장은 정당할까요? 대법원은 이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요?
거창사건, 그리고 과거사 정리 노력
거창사건은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군인들이 민간인 수백 명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이후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거창사건법')에 따라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절차를 거쳤습니다. 또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진실규명 노력도 이어졌습니다. 다만, 거창사건법에 따라 이미 사망자 및 유족 결정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과거사정리법에 따른 별도의 진실규명 절차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소멸시효 적용 여부를 둘러싼 분쟁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구 회계법(현재의 국가재정법)과 민법의 소멸시효 규정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헌법재판소는 과거사정리법에 해당하는 사건에 대해 민법의 일부 소멸시효 규정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2018. 8. 30. 선고 2014헌바148 등 전원재판부 결정) 즉, 과거 국가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이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배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소멸시효 적용 안 된다!
대법원은 거창사건이 과거사정리법에서 정한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 구 회계법 제32조(현행 국가재정법 제96조 제2항 참조)의 소멸시효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즉,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8다233686 판결)
결국 대법원은 원심 판결(부산지법 2019. 2. 14. 선고 2018나54514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냈습니다. 국가의 과거 잘못에 대해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관련 법조항 및 판례
민사판례
1951년 발생한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은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민사판례
과거 정부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은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소멸시효 규정(민법 766조 2항, 국가재정법 96조 2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
민사판례
과거사 정리 과정에서 국가의 불법행위가 밝혀진 경우, 손해배상 청구에 기존의 긴 소멸시효(불법행위 후 5년)를 적용하지 않고 짧은 소멸시효(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만 적용한다는 판결.
민사판례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이후 피해자가 국가배상을 청구할 때,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
민사판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 이후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국가는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할 수 없으며, 위자료 액수 산정에는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판결.
민사판례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국가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핵심입니다. 단, 진실규명결정 이후 상당한 기간(최대 3년) 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또한, 소송 과정에서 새로운 피해 사실을 주장하는 경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