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 안 켜고 우회전한 화물차, 뒤따르던 승용차는 잘못 없다?

2차선 도로에서 1차선으로 달리던 화물차가 갑자기 깜빡이(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우회전하다가 2차선에서 직진하던 승용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승용차 탑승자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는데요, 과연 승용차 운전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법원은 승용차 운전자의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화물차 운전자는 2차선 도로의 1차선에서 주행 중 우측에 있는 좁은 길로 진입하려고 했습니다. 화물차가 너무 커서 2차선에서 바로 우회전이 불가능했기에 1차선으로 이동 후 우회전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았고, 뒤따라오던 승용차와 충돌했습니다.

1심과 2심 법원은 화물차 운전자뿐만 아니라 승용차 운전자에게도 과실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승용차 운전자가 전방 주시 의무를 소홀히 하고, 화물차의 우회전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습니다. 화물차는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1차선으로 들어가 중앙선 가까이 접근했습니다. 심지어 반대편 차선에서 오던 차량 운전자조차 화물차가 좌회전할 것으로 생각하고 서행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뒤따르던 승용차 운전자가 화물차의 갑작스러운 우회전을 예측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또한, 승용차 운전자에게 전방 횡단보도를 주시할 의무가 있다는 원심의 판단도 부정했습니다. 화물차가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주행하며 우회전을 시도했기 때문에, 승용차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주시하며 서행할 의무까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에서 화물차 운전자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형법 제268조)**으로 처벌받았지만, 승용차 운전자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1항은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사건에서는 승용차 운전자에게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 판례는 갑작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에서, 피해 차량 운전자의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