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줄 테니 물건 내놔!" "물건 줄 테니 돈 내놔!" 서로 돈과 물건을 주고받는 계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죠. 법적으로는 이러한 관계를 쌍무계약이라고 하고, 서로 동시에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동시이행 관계라고 합니다. 내가 의무를 이행하기 전까지 상대방도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동시이행의 항변권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네가 안 줬으니 나도 안 줄 거야!" 라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인 셈이죠. 그런데 이 권리를 악용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주 사소한 하자를 빌미로 "네가 완벽하게 고쳐주기 전까지 난 돈 안 줘!" 라고 버티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수리 비용보다 훨씬 큰 돈을 주지 않기 위해 이 권리를 악용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도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인정해 줄까요?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민법 제536조 제1항은 쌍무계약에서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신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민법 제2조는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하며,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권리는 정당하게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죠.
대법원도 이러한 권리 남용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2001. 9. 18. 선고 2001다9304 판결에 따르면, 상대방이 동시이행 의무를 이행하는 데 과도한 비용이 들거나 이행이 매우 어려운 반면, 항변권자가 얻는 이득은 크지 않아 동시이행 항변권 행사가 주로 자기 채무 이행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이는 경우, 이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쌍무계약이라고 무조건 "네가 안 했으니 나도 안 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러한 주장이 권리 남용으로 인정되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짜 의무 이행을 거부하는 것인지, 아니면 핑계를 대고 돈을 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법원은 꼼꼼히 따져볼 것입니다.
민사판례
원래 서로 대가관계에 있는 계약(쌍무계약)에서만 인정되는 동시이행 항변권을, 대가관계가 없는 계약(비쌍무계약)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적용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인지에 대한 판례입니다. 결론적으로, 비쌍무계약이라도 두 채무가 같은 법률적 원인에서 발생했고, 공평한 관점에서 함께 이행되어야 할 만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동시이행 항변권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민사판례
계속적인 거래 관계에서 상대방이 이전 거래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아 앞으로도 제때 지급할지 불안한 경우, 납품을 거부할 수 있다는 판결입니다. 이를 '불안의 항변권'이라고 합니다.
민사판례
서로 다른 계약으로 생긴 채무는 특별한 약정이 없다면 동시에 이행해야 할 의무가 없다.
민사판례
부동산 매매에서 잔금 지급일이 지났지만, 판매자가 소유권 이전 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구매자는 잔금은 물론, 기존에 밀린 중도금에 대한 지연이자도 낼 필요가 없다.
민사판례
A건설사업에 투자하기로 한 B회사가 사업 진행이 불안정해지자 투자 약속(신용공여)을 철회했는데, 이것이 정당한 행동인지에 대한 판결입니다. 법원은 B회사의 철회가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상대방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면 자신의 의무 이행을 거부할 수 있다는 "불안의 항변권"을 인정한 것입니다.
민사판례
쌍방향 계약(예: 매매)에서 내가 해야 할 일(대금 지급 등)을 다 안 했으면서 상대방에게 해야 할 일(물건 인도 등)만 요구하는 소송을 걸면, 마치 "나 돈 안 낼 거야!"라고 선언한 것처럼 간주되어 계약이 파기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