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일자: 2009.11.26

형사판례

연구비와 관련된 금품 수수, 뇌물일까? 배임일까?

한국전기연구원의 책임연구원 A씨는 동시에 차세대초전도응용기술개발사업 사업단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A씨는 연구비 지원과 관련하여 B씨를 포함한 여러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검찰은 A씨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지만, 1심과 2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A씨가 사업단장으로서 한 일은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직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과연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쟁점 1: 사업단장의 업무, 연구원의 직무에 포함될까?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금품 수수 행위가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되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A씨가 공무원으로 의제되는 한국전기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이었기 때문에, 사업단장으로서의 행위가 연구원의 "직무"에 해당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 하급심 판단: 1심과 2심 법원은 사업단과 연구원이 별개의 기관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사업단장의 업무는 연구원의 직무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A씨가 사업단장으로서 금품을 수수했더라도 뇌물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 대법원 판단: 대법원은 뇌물죄에서 "직무"는 형식적 직무 뿐 아니라 사실상 관여하는 직무행위까지 포함된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 2002. 5. 31. 선고 2001도670 판결 등 참조).  즉, 사업단과 연구원이 조직상 분리되어 있더라도, A씨가 연구원의 책임연구원 지위를 바탕으로 사업단장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사업단장의 업무도 연구원의 "직무"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쟁점 2: 뇌물죄가 아니라면 배임수재죄는?

하급심은 뇌물죄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예비적으로 배임수재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배임수재죄가 성립하려면 '부정한 청탁'이 있어야 합니다.  하급심은  A씨가 금품을 받으면서 명시적인 청탁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배임수재 또한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 대법원 판단:  대법원은 부정한 청탁은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는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 2002. 4. 9. 선고 99도2165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A씨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업단장 지위에 있었고, 금품 제공자들은 연구비 지원에 대한 중대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제공된 금품의 액수가 상당하고 그 과정이 이례적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돈을 준 사람들은 A씨가 앞으로 연구 과제 선정이나 연구비 배정 등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끔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돈을 건넸다고 본 것입니다.

결론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은 A씨의 행위가 뇌물수수죄에 해당하는지 다시 판단하라고 했고, 만약 뇌물수수죄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배임수재죄는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판례는 공무원과 유사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금품 수수 행위에 대한 법적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중요한 판례로 평가됩니다.  관련 법 조항은 형법 제129조(뇌물죄), 제357조 제1항(배임수재죄)입니다.

※ 이 글은 법적 자문이나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최신 법률 정보는 반드시 재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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