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누명을 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오늘 살펴볼 판례 역시 수박 서리 누명으로 시작된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협박'이라는 것이 어떤 경우에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사건의 개요
피고인은 자신의 수박밭에서 여러 차례 수박을 도둑맞자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같은 마을에 사는 13세 소녀(피해자)가 수박밭 근처를 서성이는 것을 발견하고, 수박 도둑으로 의심하여 피해자를 붙잡았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도둑 잡았다”, “어제도 그제도 네가 수박을 따갔지”, “학교에 전화를 하겠다" 등의 말을 하며 윽박질렀습니다. 이후 피해자를 마을 사람의 집으로 데려가 자신의 의심을 이야기했고, 피해자를 돌려보내면서 “앞으로 수박이 없어지면 네 책임으로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피해자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음독 자살을 했습니다.
쟁점: 협박죄 성립 여부
이 사건의 핵심은 피고인의 언행이 협박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특히 문제가 된 발언은 "앞으로 수박이 없어지면 네 책임으로 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협박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협박의 의미: 협박죄가 성립하려면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해악을 고지해야 합니다. 이때 해악의 고지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형법 제283조 제1항, 대법원 1991.5.10. 선고 90도2102 판결)
구체성 부족: “앞으로 수박이 없어지면 네 책임으로 한다”는 말은 어떤 해악을 가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책임을 묻겠다는 표현만으로는 어떤 불이익을 줄지 알 수 없으므로 해악의 고지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당행위: 피고인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피해자를 훈계하는 과정에서 해당 발언을 했습니다. 폭력이나 유형력 행사 없이 이루어진 훈계는, 비록 피해자가 공포심을 느꼈다 하더라도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습니다. (형법 제20조)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발언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피고인의 행위는 사회상규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인과관계 부족: 피해자의 자살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이 피고인의 발언으로 직접 야기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피해자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이 사건은 누명으로 인한 비극을 보여주는 동시에 협박죄 성립 요건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단순히 불쾌감이나 막연한 두려움을 주는 정도를 넘어,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해악을 고지해야 협박죄가 성립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상황에 따라 정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는 위법성이 없을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형사판례
회사 지사장이 자신의 횡령 사실을 덮기 위해 회사 임원에게 회사 비리를 고발하겠다고 협박한 경우, 회사(법인)가 협박의 직접적인 대상은 아니지만 임원 개인에 대한 협박죄가 성립한다.
형사판례
누군가 제3자를 시켜 해악을 가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협박죄가 될 수 있지만, 단순히 그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제3자를 시켜 해악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듣는 사람이 그렇게 믿을 만한 상황이어야 합니다.
형사판례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해악을 전달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공포심을 느낄 정도라면 협박죄가 성립한다.
형사판례
두 사람 이상이 함께 협박죄로 처벌받으려면 공모 관계가 명확해야 하고, 협박이라 할 만한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하지만 사회통념상 용인할 수 있는 정도라면 협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
형사판례
누나 집에서 온몸에 고무놀을 바르고 불을 붙이겠다고 협박한 행위는, 자살하려는 의도였더라도 타인에게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하므로 협박죄가 성립한다.
형사판례
내 권리라고 해도, 그 권리를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너무 심하게 협박해서 돈이나 이득을 뜯어내면 공갈죄가 된다.